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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올해는 꽃 구경을 같이 못 한 내 친구들에게

글: 세잎클로버

올해는 꽃 구경을 같이 못 한 내 친구들에게


잘 지내지? 작년까지는 그래도 봄이 오면 만나서 벚꽃을 안 놓치고 봤는데, 올해는 다들 바쁜 탓인지 때를 놓쳤다. 그래서 벚꽃은 아니지만 꽃 그림 하나 같이 보자고 올린다.


빈센트 반 고흐, <과수원과 오렌지색 지붕 집>, 캔버스에 유채, 1888, 38 x 76 cm, 개인 소장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과수원과 오렌지색 지붕 집>이야. 활짝 핀 과수원의 꽃이 정말 아름답지? 이 그림은 고흐가 지나친 흡연과 음주로 고통을 겪고 아를로 이사한 1888년 5월에 그린 거야. 그림에 있는 오렌지색 지붕 집에 내가 산다면, 봄날 어느 때나 창밖으로 저렇게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다면, 집 밖으로 잘 안 나갈 것 같아. 아니, 꽃을 더 가까이서 보러 밖으로 나가 산책을 많이 했으려나?


이 그림을 올린 건 얼마 안 된 일이 생각나서야. 나와 남편은 벚꽃을 보러 당일 여행을 계획했어. 어디 갈까 한참을 고민했지.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나 하동 같은 곳은 벚꽃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볼 것 같아 탈락. 경주는 작년에 갔다 와서 탈락. 속초는 날이 추워 아직 안 피었다고 해서 탈락. 그렇게 사람 적고 안 가 본 곳을 찾다가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공주였어. 서울보다 남쪽인 충청남도이니까 벚꽃이 많이 피었을 것이고, 무령왕릉과 공주국립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고, 벚꽃으로 아주 유명한 곳은 아니니까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었지. 블로그에 나온 소담스러운 벚꽃은 우리 둘의 마음을 설레게 했어.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어. 남편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2시간을 달려 공주에 도착했어. 그런데 터미널에 내린 우리를 맞아 준 건 잔뜩 낀 먹구름이었어. 날씨는 그날따라 왜 그리도 쌀쌀한지, 도무지 밖에 있을 수가 없었지. 택시를 타고 공주국립박물관으로 이동하는데, 주위의 풍경은 아직도 겨울이지 뭐야. 가로수에는 잎도 아직 안 났더라고. 우리를 맞아 준 꽃은…… 개나리였어!



그나마 다행히 박물관에서 백제의 단아한 아름다움에 폭 빠져 있는 동안 날은 따뜻해졌고, 남편과 나는 도심에 있다는 공주의 벚꽃 명소로 이동했다. 하지만 공주 벚꽃은 우리를 보기 좋게 배신했어. 그곳의 벚나무는 기대와는 달리 몇 그루 되지 않았고, 그나마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만 가득이었던 거야. 예년보다 계속 낮은 기온 때문에 벚꽃이 아직 피지 않았던 거지. 공주 도심을 걸어서 관통한 나와 남편은 다리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단다. 허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우리는 벚꽃 구경 간 게 아니라 역사 유적지를 보고 온 걸로 하자며 남편과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때 본 거야. 고흐의 저 그림처럼,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걸.


그걸 본 남편이 말했어.

“파랑새는 집에 있었네.”


정말 우리가 보고 싶었던 소담스러운 벚꽃은 우리 집에 있었던 거야. 허탈하고, 허무하고, 그리고 우리 집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집 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만족을 찾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지. 그러고 보면, 내가 항상 볼 수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렘브란트 판 레인, <돌아온 탕아>, 캔버스에 유채, 1661~1669, 262 x 205 cm,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남편과 나는 그토록 보고 싶던 아름다운 벚꽃 길을 지나 집에 들어왔어.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처럼, 꾀죄죄한 몸과 지친 마음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우리 집은 탕아를 따뜻이 맞아 주는 아버지처럼 온기를 품고 우리를 맞아 주었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소파에 앉히면서, 집이 좋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평소에는 집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 하지만 어딘가를 떠났다가 올 때마다 느껴져. 집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고, 알게 모르게 집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를 품은 곳이야. 지쳐서 집에 들어오면, 집은 품었던 온기를 나누어 주지.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아름다움을 펼쳐서 보여 줘. 그래서 진심으로 집에 감사를 느끼게 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나 봐. 역시 우리 집이 좋다고 말이야. 그렇게 돌아올 내 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집에 나의 온기를 저금하듯 넣어 두면서, 작은 것에 행복해하면서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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