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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그때 회식을 같이 했던 팀원들에게

글: 세잎클로버

그때 회식을 같이 했던 팀원들에게

지금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다들 잘 지내시죠? 내가 여러분을 떠올린 이유는 여러분이 가끔 회식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번뜩번뜩 떠오르는 추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죠. 그림 하나 보면서 그때 그 시절로 가 볼까 해요.

그랜트 우드, <타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저녁>, 하드보드에 유채, 1934, 50.8 x 203.2 cm,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


그랜트 우드는 미국 지역주의 화가의 선두주자로, 추상화를 반대하고 간결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미국적인 배경에 유럽 중세 말기의 화풍을 결합하여 특유의 정돈된 그림을 선보였죠. 위에 올린 <타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저녁>은 작가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지역 주민들이 협동하여 타작한 날 저녁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큰 일을 마친 다음 즐기는 풍성한 식사의 모습이죠. 수고한 그들을 위해 작가의 어머니를 비롯한 세 명의 여인들이 풍성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대접해요. 

이 모습이 바로 오늘날의 ‘회식’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마친 회사원들이 한 곳에 모여 준비된 식사, 딱 회식 같았거든요. 그런데 작가 특유의 고요하고 정돈되어 보이는 화풍 때문인지 몰라도, 왠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주어진 음식을 군소리 없이 먹어야 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그날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날은 팀이 꾸려지고 첫 번째로 하는 회식 날이었어요. 모든 직장인의 베스트 5 안에 드는 고민은 ‘뭐 먹지?’ 죠. 그날도 ‘회식 때 뭐 먹지?’는 중요한 관심사였어요. 팀장님은 회식 메뉴를 찾는 것을 나와 후배 한 명에게 맡겼죠. 직장인들의 회식 최애 메뉴는 아무래도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 - 대부분 삼겹살이고, 소고기면 완전 땡큐 – 아니겠어요? 그래서 나는 회사 근처 삼겹살 집을 고르고 막 예약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오늘은 성협의 <야연>처럼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고, 술도 한 사발 해야지 생각하면서 말이죠. 


성협, <야연>, 종이에 담채, 19세기, 28.3 x 29.7 cm,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그때 같이 회식 메뉴를 고르는 담당이었던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저… 저기 저 친구가 채식주의자거든요.” 후배의 말인즉슨, 그 친구는 채식주의자인 데다가 사람들과 살갑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항상 회식에서 의견을 낼 수 없었고, 그래서 회식 때마다 밥과 반찬만 먹다 갔다는 거예요. 그 친구는 생선까지는 먹을 수 있는 채식주의자라서 아주 까다로운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고기가 주류인 회식에서는 배려받지 못한 모양이었어요. (사실 회는 비싸서…) 장 샤르댕의 생선이 있는 정물화 정도의 메뉴였으면 소박하긴 해도 괜찮았을 거예요. 


쟝 샤르댕, <테이블 위의 생선, 야채, 냄비 정물>, 캔버스에 유채, 1769, 31.9 x 38.3 cm, 게티 센터 소장


그래서 후배는, 이번에는 팀의 첫 회식이니까 저 친구도 먹을 수 있는 메뉴로 골랐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죠. 평소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고기로 하자꾸나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왜인지 소외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채식주의자인 그 친구가 좀 불쌍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나와 후배는 고민을 한 끝에 한정식으로 정했어요. 한정식이면 갈비도 나오고 생선이나 채소 메뉴도 나오니까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정식으로 메뉴를 정할까 한다고 하자, 갑자기 팀 내의 육식파(?)들이 들고 일어났어요. 한정식 뭐 먹을 게 있느냐며 말이에요. 한 사람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걸 먹기 싫다는 강한 어필을 했죠. 기억해요, 육식파들? 더욱 더 난감했던 건 채식주의자 후배의 반응이었어요. 이번에는 자기도 원하는 것을 먹겠다고 반기를 든 거예요. 기억나냐, 후배야? 결국 회식 메뉴를 맡았던 나와 후배만 중간에 끼어서 머리 깨지게 수많은 식당을 검색해야 했어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 하는 어느 영화의 대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때 결국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일이었죠. 음식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강렬히 드러나요. 가장 큰 본능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해요. 음식으로 사는 곳이 드러나기도 하고, 가풍이 드러나기도 하고, 취향이 드러나기도 하죠. 그리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충돌하기도 해요. 그때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는지를 보면, 그 사회나 집단의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소수를 인정하자는 쪽도 아니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자는 쪽도 아니지만, 음식은 개인과 사회를 모두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결론을 잘 모르겠지만, 그때 좋은 대안을 찾았을 거라고 믿어 봐요. 그렇게 성숙한 사회인이자 어른으로서 행동했을 거라고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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