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행
가끔 저녁에 ‘갬성 터지며’ 허기짐이 덜할 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밥 대신 즐기곤 합니다(단, 밤늦게 간식 먹을 확률 60%...).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카페 분위기의 영향이 더 큽니다. 특히, 카페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카페까지 간 건 커피보다는 음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였던 거 같아요. 음악은 카페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한 장르로 즐깁니다. 기분에 따라 발라드, 록, 헤비메탈, 재즈, 뉴에이지 등등. 음악 없는 일상은 생각할 수 없네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음악은 소리를 귀에 흘려보내 마음을 움직이지만, 꼭 소리만이 음악이 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어느 날 촬영해둔 미술 작품을 감상하던 중 갑자기 음악적인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프랑스)의 <도빌 항구에 있는 범선들>이라는 작품에서 말이에요. 예전에 프랑스 몽생미셸 투어 도중 옹플뢰르(Honfleur)라는 곳에 들렀는데, 도빌(Deauville)은 그곳에서 차로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사진으로 보니 도빌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저 그림도 마찬가지였고요.
놀라운 점은 저기 정박해 있는 배들의 돛이 팔분음표(♪)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전체적인 묘선(描線)에서도 리듬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몰입하다 보니 예전에 옹플뢰르를 거닐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마치 항구 앞 노천카페에서 재즈를 들으며 맥주 한 잔 마시고 있는 기분도 드는 거 있죠?
그런데, 이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더군요. 원래 뒤피와 ‘직접’ 만난 건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던 3년 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의 <전기의 요정>을 통해서였어요. 정말 장엄하고 신비로운 작품이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그저 프랑스의 대가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이번 ‘음표 사건’을 계기로 뒤피에 대해 좀 더 알아봤더니 그의 삶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금속 회사의 경리면서 휴일에는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는 오르간 주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 모두가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고, 모두가 음악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생 두 명은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뒤피도 평소에 여러 음악가를 존경하여 이들을 찬양하는 작품도 여럿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모차르트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모차르트의 흉상을 중심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악보가 눈에 들어오네요. 그와 관련된 다른 것도 보이시나요?
또한, 세계적인 지휘자 샤를 뮌슈(Charles Munch)와 가까운 사이여서 그의 오케스트라 연습장에 열심히 다녔고, 그 광경을 오케스트라 연작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중 하나인데요, 여기에서도 음표라던지 리듬이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무대 전면 중앙에 있는 지휘자의 리드 아래, 여성으로 보이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양옆으로는 바이올린, 하프, 첼로, 클라리넷, 호른, 트럼펫, 팀파니 등이 퍼지고 있습니다. 참 리드미컬하면서 장엄하지 않나요?
음악을 가까이에서 즐기며, 이를 그림으로 옮겨서 울려 퍼지게 한 그의 인생이 참 멋있고 부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맘만 먹으면 음악을 가까이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었네요. 현재 근무지가 종로 쪽인데, 세종문화회관엔 한 번밖에 안 가봤네요. 다음 달엔 꼭 갈 거예요.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싶어요. 더불어 종로에 있는 갤러리나 미술관에도 가고 말이에요.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혼자만의 여유(과연 그것 때문만일까!!)를 제대로 누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