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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4. 2021

산책길에서 만난 나

글: 히햐

    저에게는 오래된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산책’입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20년이 되어 가지만 전 여전히 뚜벅이 생활을 좋아합니다. 저의 산책길 코스는 집 앞 한강으로 향해 있는 산책길부터 광나루에 위치한 지역 도서관까지 왕복 1시간 거리입니다. 매주 1권 이상의 책을 읽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1주일에 1권씩 총 100권의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덕이었죠. 월요일마다 있는 모임과 도서 대출을 위해 도서관 코스의 산책길을 일주일에 두어 번씩 왕복했습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라고 했던 루소의 말처럼 많은 생각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좌)빈센트 반 고흐, <센강의 은행을 따라 걷는 길>, 캔버스에 유채, 1887, 299 x 1254 cm (우)빈센트 반 고흐, <집으로 돌아가는 화가>, 1888


제가 걸었던 그 길은 화가 고흐가 강변을 따라 걸으며 만났던 풍경이기도 했으며,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구들을 챙겨 강가로 향하는 모습은 제가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는 모습과 같기도 했습니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한 것처럼 저는 길을 걸으며 저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한강 풍경을 즐기며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읽었던 책 속으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책 속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제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내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며, 책 속의 사건이 내 삶 속의 한 장면처럼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춘기 시작 이후 아직 끝내지 못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흔히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은 10대에 해야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절에는 입시 준비로 자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저는 기질적으로 학생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를 가지고 학교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성실히 수용했던 소위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아니, 착한 학생의 가면을 썼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시는 가면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지만 말이죠. 성인이 되어서는 그 가면이 점점 두꺼워졌고,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그 가면의 무게가 버겁고 답답해지면서 가면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쓰고 있었던 그 가면과 진짜 나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자라면서 받은 환경의 영향들을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의 양육, 학교의 가르침, 사회/문화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걷어 낸 나는 누구일까 하고 말이죠. 가면을 하나씩 벗겨 낼 때마다 때로는 낯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때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나를 직면하면서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모습과 하나씩 대면하는 일들을 산책길을 통해 반복하였습니다.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은 알 수 없는 미지를 여행하는 탐험가의 모험에도 비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앙리 루소, <이국적인 수풀을 산책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907, 114 x 163.3 cm, 개인 소장


    <이국적인 수풀을 산책하는 여인> 속에서 흰 드레스를 입고 정글을 탐험하는 여인의 숲길은 위험하고 막막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숲 속에 들어왔기에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운명은 자신을 찾기 위해 긴 여행을 시작한 저의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흰색 옷은 쉽게 더럽혀질 것만 같고 숲 속에서는 부적절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국적 수풀을 산책하며 만났을 새로운 풍경과의 조우는 저의 지난 걸음 하나하나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마추어 작가로서 정규 교육 없이 미술에 대한 관심만으로 미술을 시작했던 이 그림의 작가인 앙리 루소는 49세가 되어서야 전업 작가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자 손이 가는 대로 책을 집고, 발길이 닿는 대로 미술작품과 만나고, 인문학 강의를 찾아다니며 때늦은 고민의 길을 가는 저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네 마그리트 <홀로 걷는 남자의 사색>, 1929, 139 x 105 cm

 

    산책길에서의 사색은 다양한 저의 면면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홀로 걷는 남자의 사색>에서의 산책자는 중절모를 쓴 남자이지만, 누워 있는 사람은 여자의 얼굴입니다. 마치 누워 있는 여자의 육체에서 중절모 남자의 영혼이 나온 듯, 혹은 그 반대로 누워 있는 여자가 실체 육체이고 중절모 남자는 실제 영혼인 듯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하나에서 분리된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은 한 명의 생각 속에 다양한 면들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 모습이 어떠하든 모두 나란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걷기와 함께했던 시간은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나와 만나는 시간이 되었고, 나를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눈앞에 비친 한 면의 내 모습만 바라보던 것에서 점차 다양한 측면의 나를 알아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론 부정하고 억압시켰던 나를 소중히 꺼내어 돌보아 주게 되었습니다. 내겐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반면 버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는 반면 숨기고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나의 면면들이 언제나 마음 편하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다양한 면들을 바라보고 함께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나와 산책을 하며 사색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는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산책길은 한결 가볍습니다. 나에 대한 질문은 아마 평생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 인근의 산책>, 1875


    모네의 그림 속 한 가족의 산책길에서는 평화가 느껴집니다. 함께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한 길이 아닌, 그저 좋은 날씨를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산책도 앞으로는 이럴 것 같습니다. 나에 대해 몰입했던 것에서 조금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고 싶네요. 눈앞의 풍경 그리고 바람과 햇살도 함께 느끼면서 산책과 사색을 이어 나갈 생각입니다.  안단티노, 조금 느리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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