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북살롱 Oct 24. 2021

빛나는 가을

글: 나나

    인생의 균형을 잃을 때쯤 가을은 찾아옵니다.


    가을은 경주마처럼 눈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의 고개를 잡아챕니다.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하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립니다. 그렇게 문뜩 찬 바람과 같이 다가온 화려한 자연은 빽빽한 건물에 둘러싸여 촌각을 다투는 문제들과 겨루는 우리의 엉덩이를 근질거리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쥐도 새도 모르게 스며들어 내 삶에 한 번뿐일 올해의 가을을 즐기러 자연의 품으로 떠나게 합니다. 하나둘 익어가는 단풍을 보며, 폐로 들어오는 잊고 있던 낯선 찬 공기를 느끼며, 흐르는 삶의 시간 속에 한 번뿐일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커다란 자연 앞에서 지금의 고민은 잠시나마 작아집니다. 


    <키스>로 친숙한 작가 클림트의 가을 풍경은 눈이 아릴 정도로 울긋불긋한 가을의 색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빈의 아르누보 운동을 이끈 클림트의 장식적인 특성은 풍경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그림 속 바닥에 떨어진 낙엽은 생을 다해 말라버린 모습이 아닌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구스타브 클림트 <Birch Forest I> 1902


    도시의 가을이 한 박자 쉬어가는 쉼표 같은 계절이라면 시골의 가을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엉덩이를 느긋하게 붙이고 있다가는 일 년 내내 고생한 농사를 모두 망칠 수 있으니 말이죠. 여름의 뜨거운 해와 비바람을 모두 견뎌내고 곡식이 익어가는 시골의 가을은 고생한 농부에게 보내는 폭죽처럼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가을의 축배 속에서 농부는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분주히 손을 움직입니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고생의 결실인 동시에 매서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몸은 고단해도 반 고흐의 <추수> 속 풍경처럼 노랗게 익은 논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누구보다 풍요로울 것입니다.


    그런 가을마다 농부였던 할아버지는 늘 서울로 소포를 보내셨습니다. 일 년 내내 소중히 기르신 감 중에 가장 예쁜 것만을 골라 하나하나 꼼꼼하게 종이에 싸서 말이죠. 정성으로 키운 할아버지의 감에서 시골의 가을을 한 입 베어 물면, 속을 꽉꽉 채우기 위해 견뎠을 시간이 느껴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 <추수(The Harvest)> 1888, 캔버스에 유채, 73 x 92 cm, 반 고흐 미술관


    삼촌이 보내준 올가을 시골집의 사진 속에는 아직 감이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가느다란 가지가 툭 휘어질 것처럼 알차게 익은 주황빛 감이 말이죠. 그러나 올해는 알차게 익은 열매보다 모든 잎사귀를 떨군 앙상한 가지에 유독 눈이 갑니다. 할아버지 없이 맞는 첫가을 감나무는 분주히 손을 움직여줄 농부 없이 홀로 감을 메달고 있습니다. 농부의 부재에도 열심히 자라준 감나무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감은 나무가 이미 헐벗고 나서야 달게 익습니다. 매섭게 몰아붙일 겨울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옹골진 열매를 맺을 수 있죠.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해지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던 화려한 옷을 모두 벗고 옹골지게 열매를 매단 오치윤 <감> 속의 가을 감나무처럼 우리의 인생은 저마다의 열매를 알차게 맺어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러했듯 나의 가을도 누구보다 달게 맺어 보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가을이 있음을. 유한하지만 찬란할 우리의 삶을 위하여.


오치균 <Persimmons (감)>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60x108cm





이전 19화 당신의 꿀잠을 기원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