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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2. 2021

나이 든 내 얼굴을 본다는 것

글: 세잎클로버

    길을 걷다 보면 특히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에요. 특히 걸어가며 담배 피우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혐’이에요. 뿜어 대는 담배 연기가 실린 바람에 콜록대며 제 남편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저런 행동 하게 생겼어.” 그래서 보면 정말 그렇게 생겼더라고요. 희한하죠?


    그 말을 들으며 한편 드는 생각은 물론, 내가 그렇게 보려고 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거예요. 자주 보는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어떤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순간에는, 그 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심지어 착해 보이는 사람이 한순간에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하게 생긴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죠(물론 배우의 연기도 한몫 하겠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1495~1497, 460 x 880 cm,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이 그림은 많은 분들이 아실 것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누었다는 낯익은 주제를 독창적인 구도와 창의적인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 그림에는 아주 극적인 순간이 담겨 있는데요, 예수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절대 아니라며 결백을 주장하죠.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예수와 열두 제자를 그리기 위해 사람들의 다양한 생김새와 표정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제자들의 표정과 몸짓만으로 그들이 각각 누구이며 어떤 성격인지 확실히 드러냅니다. 여기에 관련된 일화가 있습니다. 


    그림의 완성을 눈앞에 둔 다빈치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바로 예수를 배신하는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한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다빈치는 술주정뱅이 한 사람을 만납니다. 비열하고 사악하며 천박해 보이는 그를 보자마자 유다의 모델로 적격이겠다 싶었죠. 그래서 그를 모델로 유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겁니다.


    “저를 잊으셨습니까? 제가 바로 1년 전 예수님의 모델을 했던 사람입니다.”


<최후의 만찬> 부분, 예수의 얼굴 & <최후의 만찬> 부분, 유다의 얼굴


    청년 시절에 예수의 모델을 했을 정도로 순수한 얼굴을 타고났던 사람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그가 보낸 1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일화에서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마흔을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을 바르고 마사지를 하고 땡김이 같은 시술을 받는다 해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웃을 때와 찡그릴 때 쓰는 근육은 다르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 근육들의 움직임 때문에 얼굴의 주름이 생기고, 그것이 반복되면 피부에 새겨져 얼굴을 바꾼다죠. 


    그래서 뜯어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긴 하지만 거울을 볼 때면, 가끔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어떤 주름이 내려앉고 있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있는가? 그 주름이 제가 살아온 인생을 갈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소중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을까요? 좋은 근육을 많이 쓰고, 그래서 좋은 주름을 만들고,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살았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는 인생, 그렇게 남은 제 인생을 주섬주섬 갈무리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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