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나
제게는 올해 일곱 살이 된 작은 푸들 강아지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알기 전까지 꽤 오래 수의사를 꿈꾸기도 했던 저는 강아지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만 바라보는 충성스러운 강아지. 행여나 내가 눈물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조용히 다가와 곁을 지켜주는 그런 듬직한 강아지. 그러나 현실은 역시나 꿈처럼 영화 같지만은 않았습니다.
내 눈곱 떼기도 전에 강아지 눈곱부터 정리해주고 목욕이며 산책이며 손이 가는 일이 한둘이 아닌 데다가 기대와는 달리 혼자 울기라도 하는 날에는 눈치가 어쩜 그리 빠른지 ‘아 가면 귀찮아지겠다.' 싶은 표정으로 쓱 한 번 보고는 엄마에게 가버리는 야속한 녀석. 그럼에도 사진첩이 온통 강아지 사진뿐이고 나의 온 하루가 그 녀석으로 가득한 이유는 콩닥콩닥 숨 쉬는 따뜻한 털 뭉치의 온기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걱정과 무게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발치에서 느껴지는 작은 숨소리에 벅차오를 만큼 커다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작고 소중한 나의 행복.
2018년 경매에서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가를 기록하며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열렬한 애견인이었습니다. 그의 사진에 종종 등장하는 두 마리의 닥스 훈트는 그의 반려견 스탠리(Stanley)와 부기(Boogie)입니다. 곁에 두는 것만으로 부족했는지 호크니는 2년간 이 두 친구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그리기 시작합니다. 언제 절묘한 자세로 자리 잡을지 모르는 두 모델을 위해 작업실 곳곳에 강아지 쿠션을 펼쳐두고 여러 개의 이젤을 설치해 순간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40점이 넘는 그림으로 <Dog days>라는 전시를 열고 이후 일러스트 책을 출간합니다.
열심히 강아지를 그리기 전 당시 호크니는 네 명의 친구를 에이즈로 먼저 떠나 보냈습니다. 특히 가까웠던 큐레이터 친구 헨리 겔트잘러(Henry Geldzahler)의 죽음은 그를 큰 슬픔으로 몰아넣었죠.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겨낼 방법을 생각하던 호크니는 언제나 자신의 옆에서 함께 식사하고 잠을 자며 지켜주는 누구보다 소중한 두 친구 스탠리와 부기를 화폭에 담기로 합니다. 먼저 떠난 친구들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강아지들만큼은 화폭 속에서라도 영원히 있어 주길 바랬던 걸까요.
언제 자세를 바꿀지 모르는 예민한 모델님들 때문인지 그림 속 붓 자국은 간결하고 뭉툭합니다. 여유롭게 다듬고 고칠 시간이 주어진 그림도 있지만, 미처 명암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갈색 덩어리에 급하게 눈과 귀를 찍 긋고 끝나버린 그림도 보입니다.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그림 속에서 그들이 보냈을 평범한 하루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별것 아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찰나의 순간들이 말이죠. 나른한 오후 작업실 한켠의 노오란 침대에서 여유롭게 자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손바닥만큼 조그맣던 아이는 언제 그렇게 빠르게 시간이 흘렀는지 이제 털도 듬성듬성 빠지고, 자꾸만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생겨납니다. 영원히 함께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에 하루하루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욱이 소중해집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강아지의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처음 왔던 순간처럼 여전히 내게는 작고 소중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가인데 말이죠.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근사한 그림 속에 영원히 담아 주지 못하겠지만, 그런 만큼 오늘도 내 눈에 더욱더 소중히 한 번 더 담아 봅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아프지만 말고 조금만, 조금만 더 오래 곁에 머물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