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행
20대 초반, 어느 슬픈 일을 계기로 여행의 맛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여행은 제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이나 고유의 문화를 감상(하면서 술도 한잔)하는 게 최고의 낙이며, 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무언가가 주된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무언가는 미술관입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자연과 고유한 문화 탐방을 1차로 하고, 남는 시간에 기타 등등을 넣곤 했는데요, 이제는 미술관 방문을 메인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3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때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 – 1918년, 오스트리아)의 <키스>로 유명한 벨베데레 미술관 방문을 1순위로 하고, 나머지 관광 코스는 이에 맞춰서 끼워 넣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키스>와 마주했을 때의 감동이란… 이서진 씨는 <꽃보다 할배>에서 이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슴이 벅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벅찬 감동이라는 감정이 사실 그만큼은 아니었다는 걸 이내 느끼게 되었습니다. 빈에는 알베르티나 미술관도 있는데요, 벨베데레 미술관만큼은 기대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벨베데레보다 더 좋았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먼저 제가 좋아하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 – 1926년, 프랑스)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모아 온 그의 전시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걸 모르고 갔었거든요. 와와~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역시나 생각지 못한 작품을 만났기 때문인데, 그건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 – 1944년, 노르웨이)의 목판화인 <키스 4>입니다. 키스하는 남녀의 얼굴이 사랑으로 충만해 하나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서 묘한 현장감까지 느껴집니다. 그 외의 두드러진 묘사는 보이진 않지만, 이 작품 앞에 섰을 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는 의무감(?)이 앞섰다고 한다면, 이 작품에는 본능적으로 이끌렸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뜻하지 않은 진짜 감동을 받는 만큼,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2년 전,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가게 되었을 때 가장 기대하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y, 1837 – 87년, 러시아)의 <미지의 여인>인데요, 여인의 눈빛과 옷의 질감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실제로 꼭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다른 미술관에 대여 중이라는 안내문이 버티고 있더군요.
또한, 파리에 갔을 때는 시립현대미술관에 가게 되었는데요, 거기에서 라울 뒤피(Raoul Dufy, 1877 – 1953년, 프랑스)의 <전기의 요정>을 만났습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와, 대박 쩔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거 있죠? 이런 거대하면서 멋진 작품을 눈으로만 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움직이며 각을 잡다가 여기다 싶어서 딱 찍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인데요, 기가 막히죠?
정면에 있는 인물은 친구인데요, 원래 친구가 제 사진을 잘 찍어줍니다. 반면에, 본인이 나오는 건 싫어해서 가끔 제가 찍어서 보여주면 대부분 삭제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저 사진은 정말 좋아하더군요. 아마도 배경은 멋지면서 본인은 제대로 안 나와서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제 친구가 이 미술관에서는 사진을 안 찍었더군요. 물론 제가 담긴 모습도 없지요. 그래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제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언젠가 파리에 다시 가면 그땐 기필코 내 걸로 만들어 버릴 거야!!
이렇게 보면 여행을 갈 때 미술관만 다니는 것 같지만, 물론 두루두루 둘러봅니다. 달라진 점은 여행지에 좋은 미술관이나 전시가 있다면 미술관 방문 스케줄을 중심에 두고 계획한다는 것이죠. 자연과 문화도 좋지만, 미술관 여행은 이처럼 저의 진심을 깨닫게 하고, 뜻하지 않은 감동을 주기에 결코 놓칠 수 없는 순간입니다. 가끔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이런 것도 나름 삶의 묘미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