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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그런 사랑, 맞나요?

글: 다행


우리 삶의 많은 시간, 어쩌면 평생을 함께하는(마음속에 그리거나) 것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에도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보통 사랑하면 이런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요? 다음 작품처럼 말이에요.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The kiss / Liebespaar)>, 캔버스에 유채, 1907-1908, 180 x 180cm, 벨베데레 미술관


너무나 유명하고, 정말로 아름다운 그림이죠.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의 명작인 <키스>입니다. 배우 이서진 씨는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 이 작품을 보며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저는 같은 상황에서 그와 달리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긴 비행시간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고도 남은 기분이었습니다.


클림트는 결혼하지 않고 십수 명의 여성과 자유로운 이성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했던 많은 여인 중 그의 임종을 지킨 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에밀리 플뢰게(Emilie Floge, 1874-1952)입니다. 이 작품의 여성 모델도 에밀리 플뢰게라는 말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클림트는 공식적으로 그의 작품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에밀리 플뢰게와 구스타프 클림트


지금부터 위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황금빛 옷(실제로 금을 쓴)을 입은 남녀가 꽃밭 위에서 키스를 나누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혹은 키스를 막 나눈 후일 수도 있겠네요. 너무나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이 다양하게 복제된 걸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사후 70년이 지난 작가의 작품은 자유롭게 복제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키스>는 한 도자기 회사의 제품을 비롯한 다양한 업체의 디자인에 활용되기도 했고, 그 외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마케팅에 두루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충분히 활용하실 수 있지만, 이런 작품을 다른 누군가가 사진으로 찍거나 인쇄한 것을 허락 없이 쓰실 때는 예외가 될 수도 있으니 이 점은 유념하셔야겠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깊은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아까 클림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다고 말씀드린 거 기억나시죠? 그래서 이 작품도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편견 없이 살펴보실까요? 이번에는 어떻게 보이시나요? 보통 낭만적인 작품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남성은 서서 여성보다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에 여성은 무릎을 꿇고 수동적으로 남성에게 얼굴을 맡기고 있습니다. 남성의 복장에 박힌 기하학적인 무늬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각형인 반면에 여성의 경우 부드러운 원입니다. 그래서 여성의 표정을 남성에게 억압당한 채 억지로 키스를 당하는 모습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그림이라는 거죠. 이런 관점으로 다시 보니 저도 잠시 그렇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작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작가들, 특히 현대의 작가들도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로 만들어지지만, 최종적인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고요. 도슨트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작가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런 대답을 의외로 많이 듣게 됩니다. 저는 작품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전달하고 싶은데, 의외로 작품의 주인인 작가는 구체적인 설명을 아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도 분명 맞습니다! 단지 작품을 ‘읽기’ 위해서라면 미술관까지 갈 필요도 없거든요. 오히려 인터넷으로 사진을 구해서 확대해서 보는 게 작품을 해석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미술관까지 오는 데 번거롭기도 하며, 작품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까요(가까이 가다간 민망한 상황이).


그런데도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미술관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과 더불어 작품과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방금 ‘공감’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작품에 대해 느끼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 공감이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낭만적인지 아니면 남성 중심적인 일방적인 사랑인지 정말 알 수 없을까요? 다시 위의 작품으로 돌아가셔서 제목을 살펴봐 주십시오. <The kiss>라는 영어식 제목과 더불어 <Liebespaar>라는 독일식 제목을 함께 적어 뒀습니다. <Liebespaar>를 독일어 사전으로 검색해봤더니,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이 말대로라면(그리고 작가가 제목을 지었다면) 작가의 의도가 전자였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물론 사랑의 종류를 셀 수 없는 만큼, 이 작품에 대한 해석도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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