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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나의 남편에게

글: 세잎클로버


며칠 전에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한 날이 지나갔어요. 뭐 할까 뭐 할까 그러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가긴 했지만, 참 소중한 날이에요. 그때 우리가 사귀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랑, 세상 든든한 내 편이자 친구인 당신을 놓칠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나와 함께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된 자랑스러운 나의 남편, 당신을 사귀게 된 날을 떠올리며 당신에게 그림 하나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마르크 샤갈, <산책 the promenade>, 캔버스에 유채, 1917, 169.6 x 163.4cm, 국립러시아박물관 소장


마르크 샤갈의 1917년작 <산책>이에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땅을 밟고 우뚝 서 있어요. 그리고 진홍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고 둥실 떠 있어요. 쭉 뻗은 한 손이 그림 밖으로 나가 있을 정도로 높이 떠 있죠? 남자는 활짝 웃고 있네요. 하나도 안 무거운가 봐요. 여자는 무서울 만도 한데, 조금은 수줍으면서도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죠. 제목처럼 차려 입고 나들이를 나온 두 남녀의 들뜬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하늘빛도 거의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밝아서, 그들의 기분만큼 세상이 여자를 떠오르게 해 주는 것만 같아요. 땅의 색은 멀리 보이는 분홍색의 그리스 정교회 교회만 빼고 모두 풍요로운 녹색인데, 온 세상이 자신들이 산책 나온 풀밭처럼 푸르게 푸르게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이 작품의 남자는 마르크 샤갈 자신이고, 여자는 그의 부인 벨라 로젠펠트예요. 샤갈은 벨라와 1909년에 처음 만났어요. 그때 샤갈은 22세, 벨라는 14세였죠(부럽다 말하지 말아요. 흥!). 둘은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빠져들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많은 나이 차와 벨라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지요. 샤갈의 아버지는 청어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지만, 벨라의 부모는 여러 개의 보석상을 가질 정도로 부유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결국 둘의 열렬한 사랑을 가로막지는 못했답니다. 샤갈은 파리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한 뒤 1915년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그러니까 이 작품 <산책>은 결혼 3년차, 한창 달콤한 나날을 보낼 때의 작품인 셈이죠.




마르크 샤갈과 벨라 샤갈


이 작품을 보며 우리 생각이 났어요. 우리는 샤갈과 벨라처럼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었죠. 게다가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싫어했잖아요? 당신은 내가 여드름투성이에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싫어했죠. 나도 뭐, 말 없고 어두운, 눈에 잘 안 띄는 애로 당신을 기억한답니다. 그러다가 점점 친구로 친해지고, 당신은 내가 아주아주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었죠. 지금도 기억해요. 눈물 젖은 내 얼굴을 보면서 방긋 웃어 주던 그때를 말이죠. 우리는 자연스럽게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쌓여 당신이 점점 좋아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전혀 뜻밖의 순간에 당신은 나에게 사귀자고 고백했죠. 그때 갑자기 주위가 하얗게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했답니다. 사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어왔던 이유 중 하나가 이 하늘빛이었어요. 그때 제 주위를 둘러싼 색과 비슷하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남들이 보기엔 심심한 긴 연애를 이어 오다가 결혼하게 되었죠.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으면서도 남자친구일 때와 남편일 때의 당신은 참 다른 느낌이라는 점이에요. 어떨 땐 귀여운 아기 같다가도, 어떨 땐 세상 든든한 오빠 같아요. 특히 손을 꼭 잡아 줄 땐 말이죠. 그래서 지금도 내가 뜬금없이 손잡아 달라고 하잖아요? 당신은 좀 귀찮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마음이 꽉 차는지 몰라요.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 근처 공원으로 산책 갈 때 꼭 잡아 주는 당신의 손이 떠오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는 길은 그곳이 어디든 마음이 둥실둥실 떠올라요. 저절로 웃음도 나요. 샤갈 부부처럼 뭔가 싸 들고 가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사 먹는 주전부리는 왜 이리 맛있는지요. 옆을 보면 자신만만해 보이는 당신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얼굴이 저를 마주 보고 벙글 웃어 주면 마음은 하늘을 날아올라요. 그래서 날아가지 않게 팔짱을 꼭 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은 불꽃이 튀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을 꽉 채우는 행복과 동의어인 것 같아요. 바라만 보아도 웃음이 나오는 들뜨는 기분, 마음 놓고 손만 잡은 채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믿음과 안정감 말이죠. 샤갈이 오른손에 쥔 새가 보이나요? 파랑새예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샤갈은 파랑새를 이미 찾았어요. 멀리 나갈 필요 없이, 동네 언덕으로 나가는 소소한 산책만으로도 파랑새를 잡은 거죠. 우리도 우리가 함께하는 이 소소한 일상 속에서 파랑새를 계속 잡고 있기를 바라고, 당신이 계속 나의 손을 잡아 주었으면, 그 따스한 체온 속에서 뿌듯함에 둥실 떠올라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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