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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r 22. 2023

우리는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바로 이곳에서, 이 상황에 만난 우리



나는 무슨 생각이 시작되면 주로 생각의 정체와 형태를 캐치하고 그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는데, 예전에는 내 생각은 내꺼니까 그저 온전한 나만의 생각으로 그쳤다면 요즘은 그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애를 쓴다. 지금 나의 이 생각은 왜 시작되었으며 그렇게 느낀 근거는 무엇이고 그것에 근거한 생각 자체는 타당한가. 혹은 정당성이 있나. 그래서 나는 정확히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은가. 주제는 객관적인가? 아니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가? 내 생각을 펼쳐 나가는 방식은 체계적이고 설득적이기는 한가. 기존의 나의 글이나 가치관에 위배되지는 않나. 도덕적인가? 아니, 나의 사고를 오히려 너무 제한하고 있지는 않나? 등등...


이것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생긴 습관이고 또 나름의 노력인데, 모든 글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간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이 선명해져서 로 나올 때까지 머릿속을 계속 굴리고 굴리는데...

며칠간 머리를 너무 쥐어짜서일까. 커피도 잘 넘어가지 않고, 스멀스멀 두통이 올라왔다.

저장해 둔 글들을 열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또 뭔가에서 개운하지 않으면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고, 또 그걸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근거를 찾고...


안 되겠다. 과부하 걸리겠어. 머리에서 열이 나. 환기가 필요해.

도서관을 어슬렁거렸다. 어슬렁어슬렁. 목적 없이 느릿느릿.

그러다 프란츠 카프카의 두꺼운 책들 옆에서 낯 선 그림책 하나를 발견했다.

그렇지, 환기에는 그림책이지. 암.

책장에서 꺼내어 집어 들고 도서관 테라스로 나갔다. 바람이 불었고, 볕이 따뜻했다.

오설록의 삼다꿀배티를 한 모금 넘기고 책장을 넘겼다.





그 수많은 별 가운데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떻게인지 모르겠지만 너와 내가 만났어.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네 시선이 좋아.




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새벽 네 시에 나한테 전화해도 여전히 괜찮은 거,
알고 있니?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같이 온 걸까?




모든 우정은
잠시 지나가든
평생 이어지든
애정으로 변하든
불신으로 끝나든
구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더 많은 길을 걸어간다면 좋겠어.

둘이서 함께.






작가는 우정이라는 관계의 특징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던 중, 그와 우정을 나누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아낸다.



만일 그 사람을 어디 다른 데서 만났다면 우정을 쌓기가 힘들었을 텐데,


바로 이 상황에서 만났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 영화 < 노팅 힐 >에 등장하는 슈퍼스타 줄리아 로버츠의 행동을 예로 들며 말한다.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정의 표현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방식. 보통은 완전 반대로 하지요.


자기의 어려움과 독특함을 모두에게 털어놓다니요.


그런데 그렇게 한 뒤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반가워하는 표정을 보고,


그리하여 우정을 보게 된답니다.



< 글_하이케 팔러, 그림_발레리오 비달리 >


우리는 브런치에서 만났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당신의 글을 읽고 있는 나도.

바로 이곳에서, 이 상황에 만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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