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곳에서, 이 상황에 만난 우리
나는 무슨 생각이 시작되면 주로 생각의 정체와 형태를 캐치하고 그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는데, 예전에는 내 생각은 내꺼니까 그저 온전한 나만의 생각으로 그쳤다면 요즘은 그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애를 쓴다. 지금 나의 이 생각은 왜 시작되었으며 그렇게 느낀 근거는 무엇이고 그것에 근거한 생각 자체는 타당한가. 혹은 정당성이 있나. 그래서 나는 정확히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은가. 주제는 객관적인가? 아니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가? 내 생각을 펼쳐 나가는 방식은 체계적이고 설득적이기는 한가. 기존의 나의 글이나 가치관에 위배되지는 않나. 도덕적인가? 아니, 나의 사고를 오히려 너무 제한하고 있지는 않나? 등등...
이것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생긴 습관이고 또 나름의 노력인데, 모든 글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간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이 선명해져서 글로 나올 때까지 머릿속을 계속 굴리고 굴리는데...
며칠간 머리를 너무 쥐어짜서일까. 커피도 잘 넘어가지 않고, 스멀스멀 두통이 올라왔다.
저장해 둔 글들을 열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또 뭔가에서 개운하지 않으면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고, 또 그걸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근거를 찾고...
안 되겠다. 과부하 걸리겠어. 머리에서 열이 나. 환기가 필요해.
도서관을 어슬렁거렸다. 어슬렁어슬렁. 목적 없이 느릿느릿.
그러다 프란츠 카프카의 두꺼운 책들 옆에서 낯 선 그림책 하나를 발견했다.
그렇지, 환기에는 그림책이지. 암.
책장에서 꺼내어 집어 들고 도서관 테라스로 나갔다. 바람이 불었고, 볕이 따뜻했다.
오설록의 삼다꿀배티를 한 모금 넘기고 책장을 넘겼다.
그 수많은 별 가운데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떻게인지 모르겠지만 너와 내가 만났어.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네 시선이 좋아.
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새벽 네 시에 나한테 전화해도 여전히 괜찮은 거,
알고 있니?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같이 온 걸까?
모든 우정은
잠시 지나가든
평생 이어지든
애정으로 변하든
불신으로 끝나든
구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더 많은 길을 걸어간다면 좋겠어.
둘이서 함께.
작가는 우정이라는 관계의 특징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던 중, 그와 우정을 나누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아낸다.
또, 영화 < 노팅 힐 >에 등장하는 슈퍼스타 줄리아 로버츠의 행동을 예로 들며 말한다.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정의 표현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방식. 보통은 완전 반대로 하지요.
우리는 브런치에서 만났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당신의 글을 읽고 있는 나도.
바로 이곳에서, 이 상황에 만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