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이브에만 쿠키를 굽던 남자는 어쩐 일인지 보름 동안 네 번의 쿠키를 구웠는데, 두 번째 때 나를 헉하고 놀래 키더니 네 번째 때는 기어이 감동스러운 맛과 식감을 만들어 내었다.
늦은 아침,
커피 한잔을 내리고 책을 펼치고 앉아 무심하게 쿠키를 집어 먹었다가 나는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은은한 버터의 향과 함께 순식간에 입 안에서 펼쳐지는 맛과 질감들. 오직 혀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조화로운 그 상태.
혀끝에는 미끌거리는 기름의 질감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한 버터의 풍미가 들이쳤다.
단맛과 고소함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특히나 단맛의 정도는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딱 그 정도였는데 너무 달아서 느끼하거나 너무 안 달아서 맹숭맹숭하지 않았고, 고소함 또한 고소함과 탄 맛을 헷갈려한 요리사의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딱딱하지 않지만 눅진하거나 무겁지 않고, 가벼이 후드득 날리거나 바스락거리지 않지만 치아 끝에 머무는 그 찰나에 느껴지는 오묘한 아삭 거림은 가히 최고였다.
그 절묘한 식감이 쿠키의 맛을 곱절로 향상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 보았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내 가까운 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포장지를 뜯어 쿠키 하나하나를 포장하는 장면까지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려졌다가 도로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느라 애써 다른 생각을 떠올려야만 했다.
전 날 오후의 고요 속에서 달그락달그락 반죽을 하며 오븐을 돌리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구들이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그릇을 키우고 있을 때, 거실을 지키던 남자는 책을 덮고 일어나 버터를 꺼내었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그도 자기만의 그릇을 키운 것이겠지.
안타깝지만 늦잠에 빠진 남자는 여자 셋이 느낀 그 멋들어진 맛의 순간을 끝내 전해 듣지 못했다. 우리의 티타임은 남자가 깨어나기 전에 끝이 났고, 남자가 깨어났을 땐 이미 모두 일상의 톱니 속에서 뱅그르르 돌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사실 그것은 나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가 그 순간에 함께 있었거나 여운이 다 하기 전에 그 감동의 순간을 전해 듣기라도 했더라면 남자는 쉬지 않고 다섯 번째 쿠키를 만들어 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