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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05. 2023

귀엽지 말란 말이야



귀여워서 위험한 것들

혹은 그냥 위험한 것들

일단, 열두 가지만 말해 봐.


갑자기 왜냐구?


그냥.

비 오니까.

비 오잖아.





1. 고양이


자꾸만 기르고 싶단 말이야.

쓰다듬고 싶고, 보고 있고 싶고

녀석의 시크함을 느끼고 싶고 말이지.

하지만 난 기를 수 없으니까

끊임없이 소망과 현실을 저울질해야 해.



2. 투명한 눈을 반짝거리며 질문을 하는 여자


순수해.

투명한 건 순수해.

그런 순수함엔 당할 재간이 없어.

나의 모든 벽을 허물어 버리니까.


아. 흔치는 않아. 드물지.

흔했다면 나도 더 말간 사람이 되었을 텐데.



3. 한강의 바람


그 안에서 잠이 드는 건 정말 귀여워.

세상에서 가장 깊고 달콤한 잠에 들 수 있어.

하루에 두 번도 갈 수 있지.


한강이 없었다면 나는 그만 접시물에 콱!

코 박고 익사해 버렸을지도.



4. 내게 꿈을 묻는 꼬마


이 나이까지 내가 꿈을 꾸며 살아야 할 줄은 몰랐지.

원하는 직업을 가지면 꿈을 다 이룬 건 줄 알았지.

하지만 꿈은 직업이 아니었던 거야.

꿈은 결국 내 삶의 방향이지.


대답을 해주기 위해

나는 꿈을 잊지 않아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해.

너는 귀엽고 위험하지만 소중한 꼬마야.



5. 비 혹은 빗소리


비와 그 빗소리는 너무 위험해.

자꾸만 내가 뛰쳐나가니까.

나를 울게 하니까.

그러다 또 나를 안아주니까.


비는 그저 너무 위험해.



6. 동해 바다가 보이는 루프탑 카페


단지, 그걸 보기 위해서 왕복 6시간을 운전한다고?

그 바다는 거기만 있으니까,

나는 아주 비싼 커피를 마시게 되지.


그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신이 나게 달려가는 내가 귀여워.





7. 내가 소주병을 흔들어 회오리를 만들면 그저 예쁘고 재미있게 웃는 너


그런 내가 재밌니?

나를 재밌어하는 네가 재밌어.


물론, 소주도 귀엽고.


이런, 자꾸만 소주가 달아지잖아.



8. 담대한 어린이가 뒤집어 벗어놓은 양말


너는 담대한 어린이지.

담대함으로는 세상 어디에도 지지 않아.

너의 눈치 보지 않는 마음이 마음에 들어.

세상의 기준에 너를 맞추려 하지 않거든.

그러니 너는 끊임없이

흰색이 회색이 되어버린 꼬질꼬질한 양말을 벗어

아무 데나 팽개쳐놓지.


너는 정말 일관적이고 용기가 있어.

그런 너를 존경해.

물론 어이가 없어서 귀여운 것도 포함이야.



9.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김신'은 구백 살이 넘었어. 정확히는 구백마흔네 살이지.

상인지 벌인지 모를 생生을 받아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살고 있어.

김신의 꿈은 한 가지야.

무, 없을 무無가 되는 것. 소멸하는 것.

그러나 은탁이를 만나고 살고 싶어 지지.


도깨비의 사랑은 사무치는데

도깨비의 연애는 너무 달고 귀여워.

그의 질투는 정말 압권이지.


그러니 이런 그를 어찌 귀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라면 당장에 그 위험 속으로 풍덩 하고 말았을 거야.



10. 붉게 지는 해


뜨겁게 낮을 살다

더 뜨겁게 밤을 시작하는

너는 너무 찬란해.

찬란한 건 도깨비인데

도깨비는 슬프지만 귀여우니까

그러니까

너도 귀여워.

찬란해서 귀여워.


뭐? 억지라고?

인정! 하하하.



11. 마음이 죽지 않은 미국 판사님


당신의 공정함을 존경하고

당신의 식지 않은 뜨거움을 사랑해.

사람을 이해하는 당신의 유연함과

속을지도 모르는 이유에도

그저 믿어주는 그 강인함을 사랑해.

이건 귀여움이 아니지만

그냥 귀여워.


아. 귀여운 것과 사랑은 조금 닮은 걸까?

아무튼 난, 당신의 뜨거움과 유연함 그리고 강인함을 닮고 싶어.



12. 마흔 넘은 아저씨의 귀여움


아. 이건 그냥 너무 위험해.


귀여움은 어디서 나올까.

본인이 모를 때 나오지.

그리고 나도 모를 때

훅- 하고 들어오지.

출처를 알 도리가 없어.


이건 그냥, 그저 너무 위험해.

그러니 마흔 넘으면 제발, 귀엽지 말라구.

엄-청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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