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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10. 2023

하루에 십 분쯤



< 1장 / 전제(前提) >


사랑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는 건 사랑이 아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혹은

아무것도 몰라서 시작되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해결할 수 없고, 정의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게 사랑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건 좀 다르다.

좋아하는 건 대체로 이유가 있다.

물건일 때도 그렇고, 취미일 때도 그렇고, 일일 때도 그렇고, 사람일 때도 그렇다.


디자인이 좋아서, 브랜드의 이념이 좋아서

재미있어서, 스트레스가 풀려서

몰입할 수 있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성격이 나랑 잘 맞아서, 유머러스해서

등등.


단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건가 싶지만

애초에 다른 모양으로 생긴 단어라면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지 않을까?

좋아하는 직장 동료에게 "나, 너 사랑해" 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좋아하는 이유는 좋아하게 되는 이유처럼 숱하게도 많겠지.

그렇지만 그 이유가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면

싫증 나고 무의미해지고 아까워지고 얕아지는 것이

사랑과는 조금 다른 점일 것이다.

취향이나 재미를 찾는 포인트가 바뀔 수도 있고, 성취감을 느끼는 지점이 변할 수도 있으며

나랑 잘 맞다고 생각한 성격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그때가 오면 보통 다른 재미를 찾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애초에 분명한 이유가 없이 시작되기 때문에

어떠한 상태가 변한다고 해서 그렇게 금방 사라지지는 않는다.

매일 시시한 농담으로 나를 웃겨주던 남자가

인생의 크나큰 시련으로 웃음도 잃고 말도 잃었다고 해서


"더 이상 나를 웃겨주지 않는 너를, 이제 사랑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여자는 없으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착각이었을 뿐.





< 2장 / 의문(問) >


그런데 말이지.

내가 만난 너는 말이지.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거든? 분명히.

물론, 너에 대해 뭘 알고 만난 건 아니야. 너도 나를 뭘 알고 만난 게 아니고.

우리는 그저 우연한 기회로 마주하게 되었을 뿐 아무것도 몰랐지. 여전히 잘 모르고.


네가 만약 강아지였더라면 나는 그냥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강아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이니까.

발 밑을 스치며 오가는 그 순간까지 다 사랑이 되잖아?


그런데 너는 강아지가 아니잖아? 물론 고양이도 아니고.

그런데 나는 네가 좋거든?

그냥 좋다고. 마음에 들어.

그런데 이유를 잘 모르겠어.

그건, 왜 그럴까?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보고 있어.

네가 좋은 이유.

이유가 있어야 좋아하는 거잖아.


선명하지 않은 것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참 어려워.

그렇지만 반드시 선명해져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하루에 십 분쯤은 매일 생각해 볼게.


네가 좋은,

너를 좋아하는,

그 이유를 말이야.


아! 네가 먼저 알게 된다면

내게 알려주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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