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글을 못쓰고 있어요.
매일 쓰는 글이 나를 구원했는데
지금은 어떤 것도 구원이 안 돼요.
저 좀 자고 올게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고
자꾸만 나를 재우네요.
곰도 아닌데 자꾸만 자꾸만 나를 잠재우네요.
혹시나 궁금하실까 봐
혹시나 걱정하실까 봐
혹시나 기다리실까 봐
미리 인사 남겨요.
쓰지 않는 대신 읽고 올게요.
작별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 미래에 관한 책,
아름다움에 관한 책, 또 쓰기에 관한 책...
이 핑계 저 핑계로 보지 못하고 쌓아 놓은 책들을 좀 안아보고 올게요.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눈앞에 활자들이 자꾸만 번지고 흐려져서
내용을 잘 모르겠어요.
머리도 좀 막혔고 말이죠.
건강하게들 계세요.
오래지 않아 돌아올 수 있기를 노력해 볼게요.
잠에서 깨지는 못해도 쓸 수는 있을 때 돌아올 수 있도록 해볼게요.
가끔 다른 곳에서 안부 전할게요.
그 안부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나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 Relatum - Seem / Lee Ufan / 2009 >
PS.
사실, 윗글을 써놓은지 보름이 넘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 글을 올리고 겨울잠에 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좀 두려웠어요.
글을 쓰는 시간은 저에게 좀 고통이에요. 뭐 그리 대단한 글을 쓴다고 이리 거창하고 요란 법석인가 싶지만 어찌 됐든 진실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롯이 나를 들여다봐야 하고 생각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고 거기서 볼품없는 나를 대면해야 하니까 그리고 껴입은 옷들을 좀 벗어야 하니까 그 과정들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 올리지 않아도 여러 장르의 글들을 쓰곤 했습니다. 꼭 써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게 힘에 부치다고 느끼면서 쓰지 않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돌아 돌아 결국 다시 돌아온 것은, 쓰지 않는 삶이 쓰는 삶보다 더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덜 고통스러운 걸 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는데 윗글을 쓴 저 때에, 이렇게 훌쩍 '나 지금 쓰지 못하겠어요. 사라질게요.' 하고 손을 놓으면 다시 또 쓰지 못하는 시간들이 길게 반복될까 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많이 참았어요. 마음이 좀 잠잠해질 때까지 꾹꾹 눌렀어요. 뭐든 써보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형편없는 글들도 올리고 그랬네요.
그때 사라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2023년 2월 27일인데 처음부터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매일 글을 올리게 되었고 하다 보니 근력이 조금 생긴 것 같았어요. 그래서 되도록 오래, 매일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윗글을 썼을 때가 구십 일이 조금 안되었을 때인데 이왕이면 100일을 채워보고 싶었어요. 거기서 멈추면 뭔가 제대로 시동도 걸어보지 못하고 백기를 드는 기분이었거든요. 그 정도는 참아보고 싶었어요.
100일째 글을 올리고 나면 잠시 멈추려고 했는데 날짜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어제가 101일째였네요.
여전히 쓰는 것은 힘이 들어요. 컴퓨터 앞에서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벽장 속에서 책상과 컴퓨터 그 두 개만 존재하는 곳에 앉아있는 기분입니다. 마음에도, 머리에도 산책이 필요해요.
이제는 100일도 넘겼고, 다시 돌아올 자신도 조금 생겼으니 원래의 마음대로 조금 자고 오겠습니다. 그 잠이 그리 길진 못할 거예요. 어차피 불안해서. ^^
이런 글, 유난 떠는 거 같아서 올리지 말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뭐 어때요. 그쵸? ^^
윗글에 썼듯이 혹시나 궁금하실까 봐, 혹시나 걱정하실까 봐, 혹시나 기다리실까 봐. 그래서 남겨요.
돌아와 다시 쓰는 글들은 조금 더 화사한 말들이었으면 좋겠지만 섣부르게 그런 약속은 하지 않는 걸로! ^^
곧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