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지구 위 2cm
조금 구질구질해졌습니다
by
EUNJIN
Jun 7. 2023
아래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구질구질해지는 것입니다.
가장 못 견디는 것이 바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거슬러 보았습니다.
처음입니다.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구질구질하게 잡아 보았습니다.
인연을 만들기도 어렵고
인연을 버리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탓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하지 않아서 느끼게 될 후회였습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있는 용기를 다하고 더해
구질구질해져 보았습니다.
다시는 없을 일입니다.
다시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없을 일입니다.
너는 조금 비겁했습니다.
설명과 이유는 변명 같았고
책임 전가가 아니라 했지만
끝없이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미성숙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너를 좋아하는 탓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비겁함을 곱씹으며
너를 보내야 하나 봅니다.
그 비겁함의 힘으로
없었던 인연으로 돌아가야 하나 봅니다.
하나하나 떠올리고
다시 지우고
눈 뜬 밤과
눈 감은 아침을 지새웁니다.
각인된 시간과
삭제될 시간을
같게 만들어봅니다.
벌 받지 않겠습니다.
마음을 내어 주었던 대가가 혼자 받는 벌이라면
나는 벌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내어주지 않겠습니다.
구석진 마음 한 덩이도.
찢어진 마음 한 조각도.
빛바랜 마음 한 티끌도.
누구에게도.
어느 사람에게도.
오래도록 그래 보겠습니다.
keyword
인연
사람
후회
31
댓글
4
댓글
4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EUNJIN
직업
에세이스트
PD로 시작했으나 작가로 끝내고 싶은 희망을 품고 삽니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과 반짝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아직 어둡고 헤매이지만 가다보면 어디든 닿겠지요.
구독자
106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천재의 방
저 좀 자고 올게요.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