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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Jun 01. 2023

천재의 방



나는 천재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천재님의 당당함에 나는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 집 꼬맹이는 종종 그런 말을 해왔다.

꼬맹이의 무언가를 칭찬하거나 꼬맹이의 무언가에 내가 놀라했을 때.



저는 천재니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천재라서가 아니라 노력해서야.



그럼 꼬맹이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제 할 일을 하곤 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 따위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차피 천재니까.


그런 성격은 평소에도 있었다.

누구의 관심이나 인정이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포장하지 않는다.

물론 과장도 하지 않고 요란도 떨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의 의지로

열심히 하거나, 돕거나, 선물하거나, 가까이하거나, 집중하거나, 잘하거나. 그래왔다.

친구의 인정도 선생님의 인정도 부모의 인정도 그 아이에게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와 인정과 만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였다.

꼬맹이는 내내 의연하고 담대했다.


그건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꼬맹이가 두 살 때부터 주변에서 쭉 들어왔던 말이다.

특히나 해마다 두 번씩 선생님 상담을 가면 매번 다른 선생님이셨지만

모두가 입을 맞춘 듯 그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꼬맹이는 뭐랄까... 참... 시크해요.

나이가 어린데 성격이 참 멋있어요.

저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전혀 없어요.

그 나이 때 아이들은 보통 제 관심을 받으려고

제 가까이 많이 와서 많은 것을 얘기하고 또 요구하는데

꼬맹이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그런 게 없는데 또 진중하고 무던하게 잘해요.

그래서 자꾸만 꼬맹이한테 말을 걸고 싶어요.

그런데 대답도 시크해요. ^^;


꼬맹이의 성격을 너무 닮고 싶어요.

아이인데 멋있어요.




타인의 잣대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가 중요하다 보니

무언가를 할 때나 누군가를 대할 때도 계산이 없고 심플하다.


선생님의 일을 돕고 싶으면 나서지는 않지만 그냥 교실에 남아 기다린다.

선생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교실에 같이 있다가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하면 그제야 나서서 도와드린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친구를 도와 계단 청소를 하고 가겠다며 좀 늦을 거라고 전화를 한다.

나머지 공부를 하는 친구를 기다려 주고 싶어서 그 시간에 자신은 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공부를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매일 다투는 언니의 생일 선물을 사고

또 친구의 생일은 며칠 전부터 몇 번을 되뇌며 나에게까지 일일이 알려준다.

그러고는 저는 받지 못하더라도 생일 전날부터 동네 문방구와 마트를 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럴 때,



너는 선물 못 받았잖아. 괜찮아?



라고 물으면

그게 뭐? 무슨 상관이지? 하는 눈빛으로



상관없어요.



라고 말한다.


꼭 생일이 아니어도 친구에게 어떠한 선물이라도 받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너무 소중히 여기며 내내 지니고 다닌다.



제발, 이 지저분한 인형 좀 버리면 안 될까?

이것 봐, 실밥도 다 뜯어졌는데...



라고 물어도



그건 누구누구에게 받은 선물이란 말이에요.



라며 나에게 서운함을 내비친다.


그래서 꼬맹이의 팔에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팔찌가 주렁주렁이며

책상에는 구멍 난 장갑, 뜯어진 봉제 인형, 직접 만든 장식들,

오래 차고 다니다 줄이 끊어져 못쓰게 된 팔찌 구슬들,

또... 각종 메모지와 스티커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는 자존심 부리지 않고 나 너 좋아한다. 사귈래? 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친구는 세 번쯤 참고 경고하고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내가 너에게 왜 기분이 상했는지, 네가 나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고는

이제 그만 절교! 를 선언한다.


꼬맹이는 사람에 대한 마음도 정직하고 분명했다.



< pixabay.com >


어제는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며칠 전부터 약속되어 있던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냉동실에 빈자리가 없어서 못 사고 있던 터였다.

며칠을 말없이 기다리던 꼬맹이는 30일이 되자 말했다.



- 31일이니까 내일은 아이스크림을 사죠.

- 31일이 왜?

- 31일이니까 왠지 뭔가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5월에 먹기로 한 아이스크림을

  6월에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배스킨라빈스 31이니까 그럴 법도 한데 정신이 없어서 대충 그래그래 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어제 나서는 길에 혹시나 해서 앱을 확인하니 30일까지 예약을 하면 7,000원 할인이 가능했더랬다.

어차피 살 거 할인받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서 아... 어제까지 예약할걸... 하며 후회를 했더니.



그러니까 제가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후회하지 마세요.

지나간 일인데요. 뭐.

지난 간 거 자꾸 생각해 봐야 뭐해요. 생각할 필요 없어요.



하는 거다.

나는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가끔 생각한다.

나처럼 흔들거리고 예민한 여자에게서 어찌 저리 담담하고 의연한 아이가 나왔을까. 하고.

갓난아기 때부터 잘 울지 않던 아이, 잘 자던 아이, 보채지 않던 아이, 까다롭지 않던 아이,

업어주는 것보다 스스로 걷는 것을 더 좋아했던 아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던 아이.

고작 열 몇의 꼬맹이가 어찌 저리 단단할 수가 있느냐고. 그 강인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고.

가끔 아이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꼬맹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꼬맹이를 보아왔던 많은 선생님들처럼 나도 자주 생각한다.

꼬맹이를 닮고 싶다. 저 성격 참 멋있다.


어쩐지 우스운 말이다.

엄마가 아이를 닮고 싶어 하다니.

그런데 그게 사실인걸 뭘 어쩌겠는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공언할 만큼 자존감이 가득한 아이.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아이.

스스로의 신념과 가치가 분명한 아이.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

그 사람을 대함에 계산이 없고 마음에 정직한 아이.

감정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


나는 그런 우리 집 천재,

꼬맹이를 닮고 싶다.



< 비 맞으며 낚시하는 꼬맹이 천재님 >


PS.

장대비 속에서 대어를 네 마리나 잡으셨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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