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끝까지 언어들이 차올라서, 한 번만 숨을 내쉬면 모조리 넘칠 것 같은데 꾸역꾸역 누르고 삼키고, 그런 숨들을 잘게 쪼개어 겨우 밀어 넣는... 그런 날들이.
나 말고 그대들도 있나요.
궁금하군요.
새벽은 길고도 짧고,
어둠은 깊고도 얕아요.
가끔 글들이 내장을 뚫고 나와 허공을 떠도는데, 이 공간은 내게 너무 소중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일 수 없고, 더럽히고 어지럽힐 순 없다는생각이 많아요. 위태롭고 흔들리는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죠.
떠들고 싶은 그 구실을 찾아 뒤적뒤적거렸더니 이'지구 위 2cm' 매거진은 #혼잣말 이라는 설명을 이미 달아 놓았었네요.
그래요. 그렇게 치죠. 이건 그냥 혼잣말이라고.혼잣말.
글 속의 나는 늘, 고결하고 우아하고 싶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인간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전혀 고결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현실의 인간일 뿐일걸.
지구 위 2cm
늘 그런 느낌이었어요. 나는.
지구에 안착하지 못하고 언제나 2cm쯤 붕... 떠 있는 느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2cm.
2009년, 2010년 그 언저리 즈음이었을까요.
서울 동북부 어느 동네에 살았었는데 집 앞에 초등학교가 있었어요. 그 학교 앞을 자주 지나다녔는데 그 앞길은 보도블록이 깔려있었어요. 고르지 않았고 울퉁불퉁 모서리가 서로 어긋난 것들이 많았죠. 어느 날 그 모서리에 발끝이 채어 걸음이 엉키고 뒤틀려 위태로운 몸부림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바닥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게 되었죠. 보도블록 사이 돌 틈으로 민들레가, 도시의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선명하지 않은 잿빛과 채도 낮은 노란색이 묘하게 뒤섞인 초라한 민들레가 비집고 나와 기어이 피었더라고요. 그 작은 민들레의 줄기에 발길이 채어 넘어질뻔했던 거였죠.
시멘트 블록을 뚫고 나온 그 기세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그 악착스러움이 우습기도 해서어이없이 웃다가 갑자기 슬퍼졌어요. 그 얄궂은 민들레가 꼭 나 같았거든요.
모르겠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꽃이 참 처연했어요. 안타깝고 가엾기도 했나 봐요.
그때 처음 생각한 것 같아요. 나는 지구 위에 딱 2cm쯤 떠 있는 사람이구나. 평생을 등 뒤에 줄을 매달고서 저 민들레에 그 줄이 연결되어 이 땅에 안착하지도 그렇다고 자유로이 벗어나지도 못한 채 지구 위를 유영하고 있구나.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구나. 내 등 뒤에 줄은 누가 매어 놓았을까.
어릴 때 나는 몸이 약해 자주 민들레를 먹었어요. 그 쓰고 맛없는 것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자주 시장에서 민들레를 한가득 사서 달이고 즙을 내어 내게 내밀었어요.
간에 좋대, 기관지에 좋대. 약이야.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야 해.맛없어도 먹어봐.
밤늦게 일을 마친 엄마가 밤새 그 민들레를 고르고 씻고 달이고 무명천에 비틀어 일일이 즙을 짜 한 종지, 한 사발 내어 밀었어요. 그런 숱한 밤에 엄마는 한두 시간이나 몸을 누이셨을까요... 거짓말 같지만 엄마는 아직 깜깜한 어둠 속 별 빛을 가로등 삼아 다시 새벽일을 나가셨죠.
그게 엄마가 내게 보여준 사랑이자 정성이었어요.
나는 여전히 그렇게 떠 있어요.
내 등 뒤에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핑크빛 기다란 줄이 묶여있고, 헬륨 풍선처럼 그만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고 싶은 나를 그 연약한 민들레가 붙잡고 있어요. 놔주지 않을 거면 땅바닥에 발바닥이라도 닿게 해 주지. 그건 또 싫은가 봐요. 늘, 이방인 같거든요. 낯설어요. 이 세계가. 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편해요.
가을이 지났는데 여전히 찬기가 가시질 않아요.
그러고 보니 겨울이군요.
겨울은,
겨울은,
그러네요.
겨울은 오래오래 감기를 앓는 계절입니다.
엄마도, 오빠도, 언니도, 형부도 떠나보낸 계절이거든요. 그리고 내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