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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Dec 31. 2020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그곳에서 평안하신 지.





엄마. 이거 진짜 잘 들어야 해.
길어. 잘 들어야 돼요.

마흔에 고혈압으로 크게 한번 쓰러지십니다.
그리고 3년마다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거든요.
그 중간중간에 쓸개, 자궁, 맹장을 떼 내요.
잘 생각을 하셔야 돼요.
그리고 50대부터는 당뇨, 고혈압으로 고생하시고
60대에는 이제 심근 경색으로
굉장히 또 고생을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60 중간부터 또 이제 그 인공관절이라든지
관절 쪽으로 또 수술 많이 하시고
어. 70대에서는 저... 뇌졸중으로 쓰러지십니다.

이거를... 다 견딜 수......
있으시다면
또 예. 저를 낳아주시길 바랍니다. 흐흐
제가 잘 보필 하께요잉~



개그맨 정형돈이 방송  ‘시간을 달리는 남자’에서 젊은 날의 나의 엄마에게 남긴 말이다.     

멋쩍게 얘기하고 담담한 듯 뱉어 내는 그의 말속에 꾹꾹 눌러 담긴 몇십 년의 아픔이 스며 있었다. 드러낸 상처를 희색 시키려는 듯 웃으면서 마무리했지만 그의 웃음은 그 어떤 울음 보다도 슬펐다. 그곳에 함께한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그는 그의 엄마를 너무도 사랑하였다. 사랑하기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들이 되고 싶지만... 섣부르게 그러고 싶노라 말하지 못하고, 그녀가 다시 이런 아픔을 견뎌내실 수 있으실까...라는 농도 짙은 염려가 배어있었다.   




작년 이 날처럼 쓸쓸하고 추운 잿빛의 날이다.

엄마가 떠난 지 딱 일 년이 되었다.

유난히 잠을 이루지 못하던 지난 새벽, 어떤 우연이 나를 오래전 이 영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울게 했다.

새벽 4시, 베개에 얼굴을 박고 현실의 일이 비현실처럼 다가왔다.         



엄마... 그 시절 어떻게 다 견뎠어? 어떻게 살아 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자식들 때문에 너무 외롭게 가게 해서 미안해.

엄마... 다음 생엔 태어나지 마.
혹시라도 태어나면 공부 많이 해. 그리고 결혼은 하지 마.
그런데 혹시라도 결혼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해.
그래도 혹시 같은 사람과 하게 되면... 자식은 낳지 마. 다 엉망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자식까지 낳게 되면... 일곱까지는 낳지 말고, 더더욱 일곱째는 절대 낳지 마.
그런데도 또다시 일곱째까지 낳게 되면...... 엄마...
우리 좀 잘 키워줘. 먹고 자고 입고 이런 거 말고, 마음이 건강하고 따뜻하게... 아프지 않게... 부탁해 엄마.

그리고 미안해. 오늘이 엄마 떠난 지 딱 1년 되는 날이야.
하늘에서도 많이 외롭지. 미안해...
1월에 엄마한테 갈께.


2020년 12월 30일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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