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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r 05. 2023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매일매일 쌓이고 쌓인다.

하나 없애고 나면 두 개 생기고 두 개 지우고 나면 네 개가 태어난다.

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는 먹고 자고 입고 사는 것에 먼저이지 못한다.

뿌옇게 흩어진 생각들을 붙들어 다듬고 보듬고 안는 일은

그래서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멀어진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흐려지고 날마다 잊힌다.


누군가 물었다.

글이 쓰고 싶어 간질간질할 때가 있지요?

내가 대답했다.

아니오.

글이 쓰고 싶을 땐 글을 쓰고,

쓰고 싶은 글이 넘칠 땐 쓰지 못해요.

그는 하. 하. 웃었다.


내 안에 글이 넘쳐 쓰지 못한 날들이 몇 년.

풀어내지 못한 그것들을 차마 버리지도 못하였건만

그것은 끝내 찰진 퇴비가 되지 못한 채 지독한 냄새만 풍겨댔다.

제대로 썩지 못한 냄새는 나를 긁고 또 내 언저리를 갉았다.

지금 꼭 해야만 하는 말들을 꺼내어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다시 쓸 수 없을 것 같은 글들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몇 날.


너를 쌀 삼아 나는 매일매일 꼭꼭 씹는다.

네가 주는 탄수화물로 몸을 일으키고

네가 주는 수분으로 건조한 목구멍을 적신다.

네가 주는 단백질로 엉켜있는 머릿속을 헤집고

네가 주는 비타민으로 뜨겁거나 혹은 식어가는 심장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이제는 간질거리는 날들이 하루이틀사흘나흘...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마음이 켜켜이 가을처럼 쌓여간다.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먹고 자고 입고 사는 일들처럼,

해야만 하는 말들이, 다듬어야만 하는 마음이,

써야만 하는 글들이 하나둘셋넷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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