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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 Feb 23. 2023

흔적

사진 산문집

깊고 늙은 밤이었다.

월광조차 비추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걸음이 빠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누구의 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버린 후였다.


그 손은 잡기 좋게 큼직했고 그러니까 얼굴 따위 잊어버려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 했다.

한참을 서로의 비실락 비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문득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손의 주인은 물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손의 주인이 내는 목소리는 깊고 미지근한 물처럼 공기에 퍼지면서 귓가로 흘러 들어왔다. 그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따뜻했다. 물음을 들은 나는 따뜻한 목소리의 주인에게 그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정확하게 다시 말하자면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곳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디인지 모르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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