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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면화로 보는 한국 미술 시장]

by 김도형


한국 미술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한 팽창을 경험했다. 프리즈라는 글로벌 아트페어의 유입, 코로나 이후의 보복 소비, 그리고 코인 시장의 유동성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다.

이 세 가지 외부 요인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미술계 종사자와 컬렉터, 그리고 수요자 모두가 수요와 공급이 폭발하는 시점을 체감했다.


작가와 작품, 갤러리의 전시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고, 관람객들의 높아진 안목에 맞춰 박물관 전시도 ‘명품 전시’로 격상됐다. 뮤지엄숍과 부대 상품, 프로그램 등 세부적인 요소들까지 고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호황의 수혜는 대부분 메이저 갤러리와 글로벌 진출 작가, 대형 기관에 집중됐다. 국내 중소 갤러리와 무명의 작가들에게는 기대만 부풀려놓고, 정작 매출과 시장 반응은 공허함으로 남았다.


미술계에는 경기의 바이오리듬처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주기와 간격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불안감도 함께 있다. 시장 경제와 미술 시장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묘하게 하나의 서브 지표처럼 서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집트 면화 사업의 교훈을 떠올려야 한다. 19세기 후반, 이집트는 미국 남북전쟁으로 인해 면화 공급이 끊기자 급격히 면화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외부 수요가 폭증하며 경제가 호황을 누렸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국 면화가 복귀하자 수요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내수 시장은 황폐해졌다. 외부 요인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 미술 시장의 호황은 프리즈라는 외부 요인에 크게 기댄 측면이 크다. 프리즈가 떠나거나 글로벌 자본의 관심이 식는 순간, 지금의 시장 규모가 썰물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외부 요인의 ‘약발’이 서서히 사라질 시기다. 한국 미술계가 스스로의 힘으로 토대를 다지고, 장기적이고 자생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때다. 그래야만 이집트 면화처럼 단기적인 호황 뒤에 남는 건 황폐한 내수 시장이라는 결과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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