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아우라를 느낀다. 그 사람의 강인함이나 에너지, 혹은 압도되는 그 특유의 느낌들이다. 아우라는 섬세하다기보다 명확하며, 은은하다기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아우라가 필요한 이유는 우선 차별화다. 우리에게는 예술 작품들이 페인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에 이미지에 익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 중에서도 아우라를 보여야 하고, 페인팅 안에서도 독보적이어야지만 예술에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통 아우라를 평면적인 형태와 색상만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고수이고, 그 플랫한 느낌이 우리는 디지털 감각에 익숙한 나머지 감각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기에, 그 안에 리듬과 감정을 담은 터치감과 볼륨감으로 나타낸다. 그 평면적 흐름에 나오는 에너지의 리듬감을 조금이나마 부조적 입체감으로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다. 이런 에너지가 바로 우리가 느끼는 아우라라고 생각한다.
아우라는 결국 하나의 에너지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역할로 존재한다. 기존의 어떤 이미지와 작품과의 차별화이자, 작품이 단순한 제품으로 남아있지 않기 위한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아우라는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여기와 지금(Das Hier und Jetzt)’의 존재, 즉 그 시간과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이자 역사성이다. 그는 이를 “멀리 있으면서도 다가오는 듯한 독특한 현존감”이라 표현했다. 아우라는 복제할 수 없는 원본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기술적 복제 시대에는 점차 소멸해 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의식된다. 예술에서 아우라는 결국, 작품이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만남이자 경험이 되도록 하는 감각적 지표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