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자긍심과 문화적 정체성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상업에 대한 천시 경향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블루컬러와 화이트컬러에 대한 인식 차가 뚜렷하며, ‘사’ 자가 붙는 직업이 사회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더 큰 환대를 받는다. 자연스럽게 직업에 따른 자부심이나 계급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반면 영국의 워킹클래스는 단순한 경제적·사회적 계층 구분을 넘어, 강한 역사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지닌 문화적 집단이다.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맨체스터, 리버풀, 셰필드, 뉴캐슬 등의 도시에서는 노동자 계층이 근대 영국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일구었고, 그 노동이 국가를 지탱했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은 곧 정직'이라는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으며 자신의 노동 자체에 대해 도덕적 긍지를 갖는다.
또한 공동체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지역 펍, 축구팀, 공공 주택 지역 등에서 로컬 커뮤니티의 유대가 자긍심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음악, 문학, 미술 등에서도 워킹클래스는 자기표현의 주요 소재가 되며, 오아시스(Oasis) 같은 밴드는 자신들의 출신 계층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으로 내세운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역시 백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노동자 계급의 삶과 성실성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워킹클래스는 단지 소득 수준이나 직업군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삶의 방식, 말투, 가치관, 교육 접근성, 지역 문화까지 아우르는 문화적 계급으로 존재한다.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더라도 ‘나는 워킹클래스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는 계급의 이동과 별개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소속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때로 어려웠던 과거를 숨기거나 지워버리려 하고,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귀천을 나누고, 그에 따른 정체성을 단정 짓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잘살게 되더라도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나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의 존엄을 지키지 못하고 외부 환경에 휘둘리는 삶이 될 수 있다.
#워킹클래스 #문화적계급 #직업귀천 #자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