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이너는 재봉틀과 친하다 ?
- 현직 디자이너의 리얼 담론
2012년에 방영됐었던, 패션디자인을 소재로 했던 어느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살벌하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패션 세계 안에서 인물들의 욕망, 그들 사이의 음모와 갈등 등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신세경가 유아인, 유리 이 세명이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크게 웃었던 부분은 주인공이자 패션디자이너였던 신세경이 자수 재봉틀 앞에 직접 앉아 굉장히 열심히 수를 놓고 있던 장면이었다. 디자이너가 언제부터 그런 기술자 역할도 할 수 있었나..?
나는 패션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자수가 어떻게 놓여지고 어떤 기계를 사용하여 작업되는지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그 역할은 오더를 받은 공장의 자수만 놓을 줄 아는 직공들이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패션디자이너가 옷에 관련된 모든 기술직을 도맡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마치 스마트폰 디자이너가 배터리까지 손수 만들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옷의 디테일 중에는 자수, 프린트의 아트웍artwork 뿐만 아니라 단추와 스냅, 지퍼와 장식테이프 등의 각종 부자재가 들어가지만 이것들을 전부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고 작업할 줄 아는 건 아니다. 디자이너가 만능 슈퍼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분화된 분야에는 각각의 특수화된 기술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봉제만 하는 기술자가 따로 있고 또 워싱만 전문으로 하는 기술자가 따로 있다. 디자이너가 드라마에서처럼 봉제와 자수까지 다 하고 있다면 아마 우리는 집에 가기 힘들 것이다. 24시간 근무도 모자랄 테니까.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도식화로서 표현하여 이 모든 디테일을 알아보기 쉽게 표기하고 소재와 컬러 등을 정하여 업체에 투입하면 제 역할을 다 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디자인의 시작 부분,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처음이자 두뇌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자수와 프린트 또한 도안을 디자인하고 도안 안에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기법만 정해서 오더를 내리면 된다는 말씀. 신세경이 손수 놓았던 자수 작업은 그 후에 특수화된 기술자들의 몫인 것이다. 실제로 디자이너는 재봉틀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재봉틀을 사계절 내내 끼고 살아야 하지만 말이다. 나는 학생 시절, 사회에 나가면 만지지도 않을 재봉틀을 도대체 왜 강의실에 밤새 붙어 앉아 씨름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재봉틀 바느질에는 영 손재주가 없어서 나에게는 그 과정이 더 고역이었던 것 같다. 물론 봉제 방면으로 손재주가 없는 점, 디자이너 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는다. 사회에 나와서 재봉틀 앞에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앉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옷을 만드는 기술이 아닌,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지식이다. 재봉틀 만지는 게 좋고 옷을 직접 봉제까지 해야 비로소 그 일이 재밌어 보인다면 디자이너가 아닌 재봉사나 재단사, 혹은 샘플사가 되기를 권한다. 수선집과 같은 개인사업을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