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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는 쓸모없는 그래픽 프로그램

학교에서 배우는 그래픽 프로그램과 실무에 주로 쓰이는 프로그램의 차이

by 이라IRA

- 현직 패션디자이너의 리얼 담론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여러분, 대학교 진학하지 마세요.' 먼저 나는 이렇게 조언해 주고 싶다.


‘패션 디자이너가 매일 만지는 그래픽 프로그램은 ’ILLLUSTRATOR'라고 하는, ADOBE에서 나온 2D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안에 있는 펜 툴로 옷의 선과 봉제 선을 표현하고 필요시에 컬러까지 입히는 데에 일러스트레이터만큼 유용한 프로그램이 없다. 티셔츠 등에 들어가는 그래픽이나 패턴문양을 개발할 때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병행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개발해야 할 그래픽이 정교하고 복잡할 경우 ‘그래픽 전문 디자이너’를 따로 고용하여 의뢰하는 편이 디자이너로서 골머리를 덜 앓는다.

일러스트레이터는 문서를 만들기에도 적합하다. 수식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테스트 요청서나 각종 컨펌서를 작성하기에 또 일러스트레이터만큼 편리한 프로그램도 없다. 네모 도형을 만들고 그 안에 글자를 입력하는 모든 기능이 일러스트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숫자와 수식을 일상으로 접하는 패션 MD들은 문서작성을 엑셀로 해야 하지만 디자이너는 엑셀보다는 일러스트를 애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대학시절,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유일한 그래픽 프로그램은 Texpro(텍스프로)라는 아주 생소한 프로그램이었다. 텍스프로의 주 용도는 소재의 특성을 반영하여 직물을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텍스타일의 규칙적인 패턴문양 개발을 정확하고 편리하게 하는 데에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알아야지만 실무를 하는 데에 지장이 없는 줄 알고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선택 과목도 아니었고 필수과목이었던 데다, 학교 안에서 이루어졌던 그래픽 프로그램에 대한 수업은 이것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디자이너가 되어 실무를 접해보니 전혀 쓸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PC에 설치되어 있는 회사는 한군데도 없었던 점은 기가 막힌 일이었다. 소재와 패브릭의 문양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소재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패션 디자이너의 90% 이상을 이루고 있는 ‘스타일 디자이너’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하등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타일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그래픽은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이다. (패브릭 디자이너가 아닌 스타일 패션디자이너 지망생이라면 이 사항을 꼭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텍스타일 디자이너한테만 필요했던 이 프로그램을 내가 다녔던 학교의 교수님은 왜 굳이 진땀을 빼 가며 강의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디자이너 지망생의 대부분은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아닌 스타일 디자이너인데도 말이다. 믿기 싫겠지만 일러스트와 포토샵 사용 방법을 교수들이 몰라서일 거라는 설(?)이 유력하다. 교수님들은 패션디자이너가 실무에서 무슨 그래픽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나 있긴 한 걸까.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대학교는 실제로 많지 않다. 중요한 기술적 부분을 몰라도 흔히 코 앞에 닥치면 다 하게 된다고 얘기하지만 가엾은 졸업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실무에 투입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들은 처음에 서류복사 같은 잡무와 단순 노동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막내 디자이너들을 보다 보면 안타깝다 못해 안이한 대학교육에 화가 난다. 정말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ES MODE'나 ’SADI'와 같은 국내 패션 전문 학원에 가는 편이 더 낫다.


P.S

아, 그러나 우리나라는 학력 차별이 또 있는지라, 큰 회사에서는 이런 학원들을 2년제로 치고 임금에서 차별을 둔다.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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