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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

거짓말 하지 않는 결과물, 성취감

by 이라IRA


- 에피소드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S는 PC를 켜고 지난 한 주간의 판매데이터부터 확인한다. 판매데이터를 열어보는 S의 마음은 기대감 반, 긴장감 반이다. 지난주는 S가 담당했던 겨울 시즌의 신상품이 20스타일이나 출고되어 겨울 시즌의 첫 판매가 이루어졌던 기간이다. 그는 자신의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어떤지 주말 내내 궁금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판매데이터 프로그램을 열어본 S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S가 디자인했던 상품 중에 헤비 아우터 세 스타일과 코트 세 스타일이 첫 주부터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출고되자마자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쉽지 않은데 S는 믿기지 않는 판매데이터를 확인하며 가슴이 콩닥거린다. 곧 이어 기획팀 엠디가 디자인실로 뛰어 들어오더니 S와 디자인실 실장에게 환호에 가까운 인사를 건네며 말한다.

“와, S씨가 담당하는 아우터들 있죠. 첫 주부터 이 정도 반응이라면 빨리 리오더 들어가야겠는데요!”

실장은 S를 보고 슬며시 웃는다.

“S야, 네 자식들 인기 많으니 좋겠다.”

실장의 칭찬과 격려의 한마디에 S는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그 동안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주는 순간,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새삼스레 자부심을 갖고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동기부여의 순간이다.



- 현직 디자이너의 리얼 담론


자신이 디자인한 상품들은 정말로 자신의 자식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올 때 더 없이 좋은 부모의 심정이랄까.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디자인은 수많은 고민과 수많은 수정 보완작업을 거친다. 옷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여러 번의 시장동향과 트렌드에 관한 사전조사를 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예쁘고 트렌디한 디자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상품 적중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디자인실 내부 회의를 거쳐 스타일과 아이템 선정을 하고 결정된 디자인은 디자이너 손에 의해 ‘도식화’로 형상화 되어 패턴실로 토스된다.

디자이너가 요청한 각각의 디자인은 패턴사가 그 의도를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하여 ‘옷의 본’이라고 할 수 있는 종이패턴을 만들어 낸다.

패턴이 완성되면 완성된 패턴과 소재, 부자재를 디자이너는 정성스럽게 패킹하여 봉제 공장에 투입시키고 공장의 재봉틀을 거쳐 거짓말처럼 하나의 옷 샘플이 탄생한다. 샘플은 자연스러운 터치감과 외관을 위해서 워싱 공장에서 수세 혹은 기타 워싱 공정을 거친다. 워싱이 끝난 옷이 다리미로 정성스럽게 다듬어지는 과정은 이제 막 잠에서 깬 옷을 예쁘게 분단장을 시키는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된 옷은 처음 그림을 그렸던 디자이너에게 다시 돌아간다. 내가 그린 그림이 하나의 옷으로 탄생하여 내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매번 겪어도 감동적인 체험이다.

생각하는 디자인이 옷이 되어 나오는 순간, 그리고 그 옷이 출고되어 매장에 디스플레이 되고 사람들이 구매까지 해서 입고 다니는 것을 보는 순간만큼은 마냥 뿌듯하고 즐겁다. 자신의 그림 하나가 소재와 컬러를 입어 제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기분은 디자이너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자 전유물이다. 이것은 극한 상황에 있는 수많은 디자이너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직을 포기하지 않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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