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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한 두뇌

순발력, 기억력, 빠른 두뇌회전과 꼼꼼함

by 이라IRA

- 에피소드 1.


2019년 겨울인 현재, S는 디자인실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S는 우선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그는 서울에 있는 매장 중 두 곳을 선점하여 자신이 디자인하고 출시한 자식과도 같은 상품들의 판매데이터를 확인하고 매출이 부진한 아이들에 대한 원인을 현장에서 직접 조사한다. 곧 있으면 2020년 겨울 상품에 대한 품평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S는 백화점에 나온 김에 타 경쟁 브랜드의 시장조사까지 꼼꼼하게 해 두는 걸 잊지 않는다. S는 사무실로 돌아와 이번엔 2020년 봄의 신상품이 기한 내에 매장에 출고될 수 있도록 메인생산의 마지막 단계를 체크한다. 상품이 입고 되기 직전의 마지막 샘플을 받아 문제가 없는지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피는 일을 한다. 동시에 2020년의 여름 상품에 대한 원단 생산과 보정Q.C 스케줄도 같이 점검한다. 원단 생산이 늦어지면 모든 생산스케줄이 같이 꼬이기 때문이다.

19년도 상품의 메인진행의 검토를 한창 하던 S는 한숨을 돌리고 사무실 데스크 탑 앞에 앉아 2020년의 트렌드 정보사이트를 연다. 오늘 했던 지금의 시장상황과 내년의 트렌드를 비교분석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 작업을 끝내면 2020년도 겨울 품평을 준비하기 구성안을 짜고 디자인을 구상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 현직 디자이너의 리얼 담론


S가 하는 모든 일은 동시에 수행되어야 한다. 세 시즌의 각기 다른 업무, 생산스케줄을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 써 줘야 하는 셈이다. 패션 디자이너는 같은 기간 내에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업무를 같이 진행한다. 옷은 판매시기를 놓치면 바로 매출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상품 입고 기한을 늘 염두해 두고 생산스케줄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탈이 없다. 여기에 더하여 내년에 다가오는 시즌의 디자인을 미리 구상하는 업무가 겹쳐져 디자인실은 여유로울 틈이 없다.

멀티테스킹 능력과 꼼꼼함은 디자이너에게는 필수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상품진행 과정에 있어 생산사고도 빈번하므로 이때는 사고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민첩함과 빠른 두뇌회전 또한 요구된다.

그래서 디자인실의 분위기는 늘 스펙터클(?)하다. 우선순위의 일을 확실하게 정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일들을 가장 급한 일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지 않는다면 멘탈을 온전히 붙들고 있기 힘들 것이다.

여러 시즌, 여러 스타일에 대한 일을 하므로 디자이너는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기억력이 별로라면 메모하는 습관은 필수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디자이너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하루가 다 지나가고 그 날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메모하는 수첩공주, 패션 디자이너에게 추천할 만한 모습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꼼꼼한 수첩공주가 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크고 작은 사고와 돌발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 에피소드 2


“이 데님자켓.. 너무 밝아서 어딘지 빈약해보이지 않나요? 다크 톤으로 바꿀까? ”

S가 진행하는 데님자켓 한 스타일을 두고 이제 공장에서 봉제가 들어가야 할 시점에서 P실장은 워싱 톤을 바꾸고 싶어 한다. S는 지금 이 상태의 컬러가 더 좋지만 P실장을 설득하지 못하고 실장이 원하는 대로 결국엔 컬러를 바꾸기로 한다.

“죄송한데요, 이 자켓 다크톤으로 컬러 재 테스트해서 다시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근데 컬러가 바뀌면 봉사컬러도 바뀌어야 하니 봉제는 아직 들어가지 마세요.”

S는 업체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납기 날짜를 먼저 떠올리고 시간계사을 하느라 S의 마지막 멘트를 듣지 못한 업체는 작업을 밀어버린다. 이 사실을 생산팀도 S도 파악하지 못한 채 다시 테스트한 다크 컬러를 컨펌해준 S는 최종 입고샘플에서 다크한 네이비 컬러에 연한 하늘색 스티치사 컬러가 동동 뜨는 웃기는 옷을 받게 된다.


사고 난 옷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사고가 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범인(?)을 색출해 내는 작업이 선행된다. 이를 대비하여 디자이너는 컨펌한 내용과 날짜가 적힌 컨펌 시트를 공개하고 다 같이 모여 이를 체크한다. 이 때 컨펌 시트는 자신의 방어수단이자 방탄조끼 역할을 하게 되므로 컨펌시트를 작성할 때에는 자질구레한 모든 것 까지 세세하게 적어 놓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증거 없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곤란한 상황에 처해지니 말이다.

S의 마지막 컨펌서에는 옷의 컬러를 재 테스트하고 이에 따라 봉사컬러도 바뀔 수 있으니 봉제작업을 시작하지 말라는 멘트와 함께 봉사컬러는 워싱 컨펌이 끝나고 지정하겠다는 멘트가 기재되어 있다. 이 서류만 보면 이 공식문서를 무시하고 작업을 밀어버린 협력업체에 과실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생산팀의 담당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오류는 S에게 있었으니, 최종 워싱 컨펌을 다크톤으로 내 주고 바꾼 스티치사 컬러를 깜빡 빠트린 채 작업지시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워싱 컨펌만 하고 스티치사컬러 수정하는 것을 순간 잊어 버렸던 S에게도 결국 큰 책임이 돌아간다.




- 현직 디자이너의 조언


업무상 모든 일을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고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패션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평소에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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