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피캣은 그만

by 이라IRA

허구한 날 백화점과 의류 매장 탈의실에서 몰카를 찍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은 참으로 비루하고 볼품없다. 디자이너에게조차 카피가 아닌 창조는 분명 어려운 과제이다. 시즌 당 백 개 이상의 디자인을 해야 하는 이들로서 카피는 하나의 검증된 모델을 따라가는 수월한 작업이자 빨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름길인 지라, 이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더러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옷을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을 실장 앞에 내놓으면 참고모델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은 ‘근거없는’ 위험 디자인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혹은 일말의 죄의식 없이 카피캣을 자처하는 디자이너들과 그래서 각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가 되어 버리는 국내 패션세계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에서 가장 관대하게 처벌되는 범죄 중에서는 경제사범, 성범죄와 더불어 ‘디자인 카피’가 있다. 음악과 영화계에서는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의 실효성과 강제성이 제대로 정착 되었으나 디자인 분야에서만큼은 이 정책이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다. 때문에 모 브랜드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나와 히트를 치면 몇일 후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동일한 디자인의 옷들이 매장마다 깔려 있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카피디자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디자인의 저작권을 보호한다면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디자인물들이 세상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현 패션세계와 업무환경을 생각했을 때 마냥 꿈같은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이 강한 유럽의 선진국 안에서 디자이너들이 창조의 고통 때문에 회사와 정부에 불만을 갖고 시위라도 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의 시스템과 정책을 관찰하고 좋은 점을 한국 기업에 점진적으로라도 도입한다면 비단 패션계 뿐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한국의 모든 사회인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업무환경과 삶의 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카피를 허용하면 오히려 더 심한 경쟁을 일으킨다. ‘반응이 좋은 디자인을 누가 더 빨리 카피하여 시장에 내 놓을 것인가’가 관건이 되어 버리는 웃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디자인 분야는 희망이 없다.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 안에서,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급박하게 돌아가는 패션계에서 저작권의 보호는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동대문 시장에서 디자인카피가 전면적으로 금지된다면 시장전체가 즉시 망할 지도 모른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까?) 어제 패션지에서 나온 옷이 오늘 동대문 시장에 도배되다시피 깔리는 실정이니 만큼 시장 유통의 스피드를 존중(?)해야 한다면 카피를 전면 금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카피가 불가피한 패션시장의 메커니즘을 무너트리지 않는 선에서 오리지날 디지인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생각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 판권’ 이라는 법을 모든 디자인 분야에서 실행하면 어떨까. 카피를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디자인 판권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이익을 내는 것이다. 카피를 하고 싶은 디자인은 판권을 사서 하면 되고 그 외에는 각 디자이너의 개성을 반영한 옷을 시중에 내놓는 방법, 그럼 서울의 패션거리도 ‘그 나물에 그 밥’인 마냥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이 아닌 저마다의 특색 있는 패션과 개성을 갖춘 사람들로 채워진 멋진 패션거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브루클린이나 유럽의 여러 패션도시의 스트릿street처럼 말이다.

디자인 저작권에 대한 법률을 강화시킨다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창조의 고통보다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흥미가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믿는다. 더불어 시중에는 각 브랜드별로 더 다양한 디자인이 출시될 수 있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keyword
이전 25화밤에 퇴근해도 상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