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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y 09. 2020

건강, 새 아침

 방사선 치료가 끝났다. 항암주사치료보다는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얕봤던 방사선 치료는 한 달 내도록 사람을 반 불구로 만들어 놓았다. 메스꺼움과 구토, 설사에 시달리며 길고 긴 5주가 지났다. 그 동안 벚꽃이 만발했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화창한 날씨가 지속됐다. 치료 중에도 뭔가를 하고 어디를 가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기간 내내 나는 수술 회복 때 보다 더 아픈 환자처럼 집에서 누워만 지냈다. 어쨌든 뭐가 됐더라도 끝은 있으니 다행이다. 


 치료가 끝나고 3주 정도 지나니 살만하다. 건강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이젠 진짜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누구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드디어 갖게 되었다. 이 사실을 매번 상기하면서 혼자 막 기뻐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하는 노동을 의무적으로 하면서 살았던 예전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절감한다. 다시는 자발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 

 이 과정도 즐겁다. 생계를 위해 새 일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예전엔 미처 엄두도 내지 못 했던 일을 해보고 아주 적은 수익이라도 해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나를 보면서 왜 진작 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 끔찍했던 지옥의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한 발짝 내 딛는 일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는지..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고 했었나.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작은 습관과 반복되는 일상이 모여 나를 가두고 내 전체를 지배했던 것 같다. 조직 밖으로 나가서 사는 삶이 두려웠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매 순간 나를 붙들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암이라는 병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나를 스스로 돌보기 시작하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자꾸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만하지 못했지 하는 쓸 데 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 어쨌든 평화로운 지금의 내 상태만 온전히 느끼면 될 일이다. 매일 아침 새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아파트 앞 정원의 경치와 한 잔의 향긋하고 구수한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지금만을 느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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