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 마더스'
행복이란 무엇일까. 죽는 날까지 먹고 놀아도 다 쓰지 못할만큼의 재산? 또는 누구도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권력,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싶은 명예, 이런 것들을 손에 쥔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 질까? 어느정도의 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없는 것 보다야 백 번 나은 조건들이다. 그러나 행복의 완전한 필요충분 조건이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내 인생에 사랑이 빠져 있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마음의 안정과 평화가 없는 권력과 돈은 오히려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 법이다.
사랑과 심적인 안정은 인간의 행복을 완성시켜 주는 데에 없어서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영화 '투 마더스'를 보고 감독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나는 이것이라 생각했다.
사 계절 내내 그림같은 태평양 해변 앞에 내 집을 두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매일같이 누리면서 수영과 서핑을 즐기는 삶, 떠날 염려 없는 절친이 항상 곁에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파티를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는 삶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축복받은 인생이 아닐까? 내 삶이 이렇다면 나는 특별히 많은 재산을 바라지 않고도, 소확행만으로도 하루하루를 만족하고 감사해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를 검색해 보면 나의 감상과는 다르게 대체로 선정적인 기사와 평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일부 (한심함)기자들은 이 영화를 '중년 여자 둘이 상대방의 아들과 크로스 섹스를 즐기는 스토리'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은 선정적인 영화평에 혹한 나머지, 이 소재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영화는 상당부분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서의 나의 소감은 그들이 바랬던 것처럼' 말초신경의 자극'이 아니었다. 오히려 힐링 받은 기분이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무시 받아도 상관없다. 영화 속 릴과 로즈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그토록 사랑한다면 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연봉을 두 배로 주겠다고 하는 곳이든, 별천지가 있는 어떤 곳이든 굳이 가고 싶지 않다. 영화 속 이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나는 눈물 나도록 부러웠다.
이사나 결혼 문제로 언제까지나 가까이에서 살 수 없는 친구들은 아무리 친해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거리가 멀어져 자주 만날 수 없게 되면 서로 서서히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현대사회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실감이라고 해야 하나. 비록 그 상실감이 갑작스럽거나 크게 다가오지는 않으나 아주 천천히, 오랜시간을 들여 우리 사이를 비집고 끼어 든다. 서로간의 돈독했던 정은 세지 않은 파도에 서서히 침식당하는 돌처럼 민둥민둥해져 나중엔 서로 데면데면해져 버리고 마는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랬던 예전 나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사랑하게 되는 이가 친구의 아들이라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뭐, 살다 보면 때론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그게 범죄행위만 아니라면 굳이 힐난할것 까지야..
나는 이 또한 그들이 누리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라고 느껴졌다. 이 지역, 이 범주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그래서 사랑도 자연스레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서 구하게 되는 심리 말이다. 파라다이스 안의 이브가 굳이 외부의 누군가가 아닌, 같은 천국 안에 살고 있는 아담을 사랑하게 되는게 자연스럽듯.
살다 보면 사랑에 나이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 살 이상의 나이차가 이상적이고 또 어느 정도의 나이차가 넘어가면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규정하는게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이 가는데 어쩔거야, 사람의 마음이란 자로 재듯 철두철미하지 않다. 마음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영화 속 그들은 죽어서 따로 갈 필요도 없는, 지상의 낙원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