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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15. 2022

형제, 자매와의 우애는 안녕하신가요?

 형제 자매간의 우애가 두터운 가정을 나는 종종 진심으로 부러워하고는 한다. 그러나 ‘더 크라운’이라는, 현존하는 영국 왕실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형제간의 내밀한 갈등은 계층과 지역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또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이 리얼한 드라마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하고 싶다.     

 

 현 시대의 인물, 특히나 권위 있는 왕실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버젓이 드라마화 할 수 있는지, 역시 유럽은 권위 따위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놀라운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좋게 얘기하자면 왕실 사람들도 지극히 인간적인, 대중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걸 어필한다고 평할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얘기하자면 왕실의 치부라고도 볼 수 있는 인간관계 속의 온갖 치사하고 째째한 갈등과 시샘, 비열한 내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본 이후라면 감상평이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 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것 까지 다 까발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보게 되니까 말이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매간의 갈등이었다. 현재 왕위 자리에 있는 엘리자베스 2세와 언제나 언니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점이 최대 불만인 동생 마거릿 공주의 갈등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조용한 인생을 살고 싶었던 내성적이고 숫기 없는 엘리자베스와 다르게 외향적이고 끼가 넘쳤던 어린 마거릿이 미래에 언니 대신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안 되겠냐고 묻고 나서 호되게 질책을 당했을 때부터 이 둘의 갈등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재밌었던 점은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으나 일단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는 이후에 대중의 관심을 동생에게 빼앗기기 싫어했다는 점이었다. 인기를 덜어주기 싫은 언니와 그 인기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려는 동생의 인기대결(?)이라고 해야 할까, 마거릿 공주가 워낙 사교적인 성격이라 사람들로부터 쉽게 호감을 사는 편이고 이를 내심 시기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드라마에서는 정말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는 1960년대 영국이 IMF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경제위기에 빠질 뻔 했을때, 마거릿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언니를 대신하여 국가를 구해 내었던 사건을 통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과 재치, 유머감각으로 단번에 미국의 존슨 대통령의 환심을 사고 마침내 미국으로부터 금융구제를 받아 영국을 재정파탄에서 구해 내었던 마거릿 공주, 이후 마거릿은 그 보상으로 훈장이나 여타 상 대신 자신에게 왕의 임무를 좀 더 나눠줄 것을 언니에게 요구하지만 이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결국 동생의 염원을 끝내 거절하고 마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엘리자베스는 2인자로서 소외 받는다고 느끼는 마거릿의 마음을 또한번 절망에 빠트렸다. 


 아버지인 조지 6세의 사랑을 두고도 이들은 종종  갈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언니보다 자신에게 더 기울었다고 자부하는 동생 마거릿과 이를 씁쓸하게 받아들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게 바라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가족사와 별반 다르지 않는 자매간의 경쟁과 갈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고 쓴 웃음을 지었더랬다.     

 

 나이가 들면 이런 문제에서 해방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은 조금도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내 여동생의 관계는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의 관계보다 더 심각하다. 내 몸이 크게 아프게 되자 그동안 동생에게 쌓였던 미움이 더 증폭되는 나를 보면서 요즘 더욱 마음이 좋지가 않다.      

 

 언니의 눈으로 봤을 때 동생은 성인이 되고 나서 이미 언니와 경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크고 의미 있는 밭을 일구어 냈다. 하지만 동생은 자매간의 경쟁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황에 놓이게 된 지금도 오히려 그 모드를 더 강화하려는 듯한 동생의 행동에 어리둥절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모친의 관심이 아픈 다른 자매에게 치우치는 상황이 싫은 건지 모르겠다. 예전보다 더 효도하고 더욱 더 큼직큼직한 선물 공세를 펴는 그 아이를 보면서 못나고 불행한 내 신세가 더 확대되어 보이는 건 설마 그 아이가 의도한 결과일까, 단순한 내 자격지심일까. 나는 그 아이와의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불행을 뜻 밖에도 리얼한 영국 왕실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더 크라운’, 정말 잘 만들었고 재미있다. 넷플릭스에서 한번 씩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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