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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09. 2021

'오만과 편견'이 왜 명작이지?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원작 도서와 영화를 보고


제인 오스틴의 그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 내 경우 소설보다는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14년전이니까 정말 아득하다;; 솔직하게 처음 봤을 당시의 느낌은 그냥 '여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양념을 맛깔스럽게 쓴 로맨스물' 이었다. 어쨌든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무지막지하게 부유한 남자 다아시와 맺어지고 끝이 나니까 말이다. 지금도 사실  제인오스틴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이 작품이 왜 세기를 걸쳐 명작으로 칭송받아야 하는지 더더욱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리지(엘리자베스 애칭)라는 인물이 당대 여성으로서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당찬 캐릭터였으며 이 작품이 당시로서 아무리 선구적이었다고 해도 고작 신데렐라 스토리 가지고 현대에 와서까지 고전이니, 수작이니, 제인오스틴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니 칭송하는 게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로 5년쯤 뒤였을까, 다시 봤던 영화 '오만과 편견'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여타 다른 신데렐라의 통속극과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품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자신과 자신의 자매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는 인물이다. 여성은 결혼 아니면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엘리자베스의 냉소적인 캐릭터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만과 편견'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가진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그 집안의 딸들 중 어느 누구도 상속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의 재산을 물려받는 이는 엉뚱하게도 콜린스라는 먼 친척의 어떤 남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이 '콜린스'라는 기묘한 캐릭터에 대한 묘사를 빼 놓지 않는데 이 부분이 너무 재미있다.


                                       < 영화 '오만과 편견' 속 캐릭터 콜린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속물스럽고 천박하며 위트와 재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다 아둔하고 비호감인 이 인물이 단순하게 '남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베넷의 직계가족인 딸들을 제치고 유산을 상속받을 거라는 사실, 게다가 운 좋게도 성직자의 직업으로 '교구'라는 작은 영토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부당한 현실을 작품은 강한 풍자를 섞어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짧고 강렬하게 (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 비꼬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이 콜린스에 대한 비틀기가 짜증스러울 정도로 길고도 길게 묘사되어 있다. 읽다가 '알았어, 얘 비호감인거 알겠으니까 그만좀 까!' 이렇게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이 B급 로맨스가 되지 않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한 끗의 '의식' 과 이를 통한 풍자와 위트였기 때문인 듯 싶다.


 너무 끔찍했던 건, 엘리자베스의 절친인 샬롯이 어쩔 수 없는 선택지로서 콜린스와의 결혼을 선택했다는 사실이었다. 스물 일곱이 될 때까지 '단 한번도 예뻤던' 적 없어서(소설에 이렇게 나와있다.), 그래서 '도도할 권리'조차 없는 샬롯은 들어오는 청혼을 가릴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현실을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샬롯, 왜 이렇게 짠하니? 이 대목을 보고 얼마나 웃프던지..


 그런데 그로부터 100년이 넘은 현 시점의 한국이라고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이 되니 더 웃픈건 나뿐일까? 소설 속에는 이들이 결혼한 이후로도 콜린스 부부의 풍경(?)을 자주 묘사해주고는 하는데 정말 지루했다. 그래서 콜린스가 등장하는 대목만 나오면 책장을 엄청 빨리 넘겼더랬다.


 나는 제인오스틴의 풍자와 묘사방식이 별로 재미가 없다. ㅋ 오히려 영화가 이 인물들에 대한 풍자와 위트를  순간순간 잘 담아내는 데에 더 탁월했다고 말하고 싶다. 한 마디로 나는 영화가 더 취향저격이었는데, 주인공 엘리자베스에 대한 캐릭터도 소설과 영화가 서로 약간 다르게 표현된 듯 하다.


다아시와 빙리는 소설 속 캐릭터들이 튀어나와 그대로 재현된 듯 해서 놀랐다. 개인적으로 배우 선정을 매우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달랐다.

영화 <오만과 편견> 속 다아시와 빙리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글쎄, 뭐랄까.. 엘리자베스의 캐릭터가 영민하고 상황을 직시할 줄 아는 냉철한 캐릭터인건 분명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좀 더 부드럽고 상냥하게 묘사되어 있다. 불쾌한 상황에서도 직설적이지 않고 상대방이 눈치 못챌 정도로 우회할 줄도 아는, 속된 말로 돌려 까기도 할줄 아는 현명한 캐릭터. 반면 영화에서는 소설 속 엘리자베스보다 좀 더 강단있고 냉소적이다. 뭐, 영화는 현대에 와서 만들어졌으니 현대적 정서를 반영해 감독이 캐릭터를 약간 변형시켰을 수도 있다. 흠, 나는 영화 속 엘리자베스가  훨씬 더 좋다!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해서 더 그렇기도..; 그러나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영화를 보고 당황해 하기도 한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며.. 심지어 지인 중 한명은 이에 분노를 표출하기까지 했었다.


 그 영민하고 냉철한 엘리자베스까지도 자신의 페미니즘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최상의 안정된 자리를  현실적인 타협을 통해 찾는 것, 즉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온건한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을 쟁취하는 결말을 우리는 보게 된다.(별로야..;)

 

 개인적으로 영화가 더 좋았다. 솔직히 소설은 좀... 제인 오스틴의 시시콜콜한 설명과 묘사, 구구절절한 긴 문장이 나는 읽기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코드가 안맞는다고 해야할까. 실제로 문학 평론가 중에서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호불호가 나뉜다고 한다. 누구였더라, 오스틴이 옆에 있었으면 주먹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그의 소설이 싫다고 얘기했던 작가마저 있을 정도..

 

 그치만 그의 작품이 영화화되면 희한하게도 꽤 재미있다.  오스틴의 작품은 명작과 웹소설과 같은 B급 로맨스 물의 중간에 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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