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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18. 2021

오리의 홀로서기2.

 9~10월 사이에 오리들의 번식기가 온 듯 했다. 호수 위에 민들레 꽃씨처럼 작고 가냘픈 털 뭉치 아기들이 둥둥 떠 다녔다. 새끼들은 작은 발로 무거운 물을 밀어내며 어미 새 뒤를 바삐 쫓아다녔다. 아기들의 탄생에 이어 공원 안에서는 작가들의 사진전도 있었다. 호수에 찾아오는 각종 새를 대상으로 하는 야외 전시회였는데 나는 내가 매일 가는 공원에 그렇게 많은 새가 살고 또 오가는지 이 사진전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물에서 주로 사는 오리 종류만 해도 꽤 되었다. 논병아리, 뿔논병아리, 흰 뺨 검둥오리, 물 닭, 원앙.. 그런데 흰둥이가 빠져 있다. 나는 작가들의 사진 사이로 흰둥이를 촬영한 나의 사진을 걸어 놓고 ‘집오리’라고 명시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새 생명이 탄생하고 사진전까지 열리니 호수 공원 안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듯 보였다. 한 쌍씩 짝을 지어 다니는 원앙부부, 부모 새와 한 군을 지어 다니는 새끼 새들로 호수가 더 풍요로워 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흰둥이는 늘 혼자였다. 흰둥이가 한 쪽 뭍에서 반대편의 뭍을 향해 조용히 호수를 가로 지르는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지켜봤다. 고고하다, 장하다, 그렇게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수 있다고 알아듣지도 못할 그 아이를 나는 조용히 응원했다.


 학창 시절부터 비혼 주의였던 나는 어차피 인생은 고독한 여정이므로 자유로운 하나가 더 나은 길이라고 확신했다. 원하지도 않는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지 않는 게 나다운 모습이라고 여겼고 여태 그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런데 흰둥이가 혼자 호수를 떠도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왜 그렇게 무너졌던 걸까.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길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흰둥이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부터인지 흰둥이의 옆에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가 한 마리씩 동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종이 다른 새들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건가? 흰둥이 옆에 있던 아이들은 흰 뺨 검둥오리인 듯 했다. 신기하게도 흰둥이는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새들과 호수를 유유히 가로지르고 나란히 앉아서 낮잠도 청했다. 어떤 날은 어미는 보이지 않고 새끼하고만 둘이 호수 산책을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흰둥이가 앞장서면 새끼는 열심히 뒤를 따라왔다. 양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흰둥이의 모습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견하고 기특했다. 내가 키운 아이는 아니지만 마치 다 큰 아들을 좋은 혼처로 장가보낸 기분이 들었다. 자식이 달린 신부이면 어떤가. 흰둥이의 남은 생을 사랑으로 채워주려는 어미오리가 나에게는 그 어떤 새 보다도 더 예뻐 보였다. 덤으로 그 동안 몰랐었던 흰둥이의 성별도 알게 되었다.

                     양부모 노릇을 하고 있는 흰둥이

 

 그 뒤로 검둥오리들이 혹여 철새는 아닐지, 그래서 철이 지나면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버리지는 않을지 또 걱정이 되어 그 종의 특성과 서식환경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텃새라고 하는 정보에 마음이 놓였다. 그들이 흰 뺨 검둥오리가 확실하다면 그들은 흰둥이를 떠날 염려가 없다. 그러나 혹여 그들만의 사정으로 서로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닥친다 해도 예전만큼 짠한 마음으로 흰둥이를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에는 몰랐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련에 상처 입었던 마음이 겁에 질린 상태로 닫혀 있을 거라고만 생각해 왔었다. 자신만의 동굴 안에서 죽어갈 거라 생각했던 흰둥이는 내 예상을 뒤집었다. 그 아이는 마음을 열어 둔 채로 새 인연을 만들었다. 이젠 그 아이가 자신의 남은 삶도 무난하게 살아낼 거라고 믿게 되었다. 누군가와 인생을 나누는 흰둥이를 이제 한결 편해진 눈으로 바라본다.


흰둥이와 그의 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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