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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Dec 04. 2021

일상의 소소한 마약

 

 삶이란 어찌 생각해보면 참 단순하다.      

 인터넷으로 마트 식재료를 쇼핑하던 중 홈 베이킹용 호떡 재료를 발견했다. 만드는 과정도 간편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호떡보다 더 맛있다는 평들을 읽고 즉시 장바구니에 두 개를 담았다. 그리고는 하나에 320칼로리나 한다는 달달한 그 간식을 한 달 동안 꾸준히, 매일 두 개씩 먹었다. 수영을 갔다 오면 몸 안에서 ‘당 보충’을 격하게 요구하는데 이 때 호떡만한 간식도 없었다. 문제는 수영을 다녀오면 보통 해가 진 이후가 된다는 점, 저녁 이후에 호떡도 먹고 밥도 양껏 먹으니 한 달 만에 체중은 2Kg이 늘어났다. 아, 살을 빼야 할 시점이 왔지만 개의치 않는다. 호떡 두 개면 인생이 갑자기 행복해지는 경험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타고난 기질이 우울해서 인생이 대체로 쉽지 않은 편이다. 종종 자기연민과 무기력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걱정할 게 없다. 이런 것들을 순간적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처방전을 몇 가지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한 없이 쳐지는 날이면 내 경우엔 재미있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게 신상에 좋다. 이 때 반드시 ‘재미있고 좋아하는’이라는 기호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는 과정에서 참을성만을 요구하는 단순 반복 운동을 질색하는 편이다. 그래서 헬스나 요가, 필라테스와 같은 정적인 운동은 하지 못한다. 내 경우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액티비티한 스포츠류를 즐기는 편인데 재미도 재미지만 레벨별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레벨을 업 할 때 마다 느끼는 성취감도 크기 때문이다. 한때 재즈댄스, 스노보드, 승마에 빠졌었고 지금은 수영을 열심히 파는 중이다. 수영을 다녀온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은 하루를 보내는 기분과 모든 자잘한 일과를 대하는 자세마저 크게 다르다. 그렇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수영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우울한 인생에서 탈피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야 하나. 웬만한 항우울제보다 효과적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호떡도 마찬가지 맥락. 어떤 이들은 식탐이 죄악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내 타고난 식탐에 오히려 감사(?)해 하는 편이다. 맛난 음식만큼이나 사람의 기분을 업시켜 주는 것도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 집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홈 카페에서 카페 라떼를 만들어 마시는데 커피의 예술적인 향과 맛도 그렇지만 몸 안 구석구석에 퍼지는 카페인의 활력(?)을 바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정말이지 인생에서 커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마카롱, 생크림 케이크, 크로플, 수블레 팬케익 등, 호떡과 같이 달달한 디저트류들도 일과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는 데에 있어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음악도 큰 도움이 된다. 생활화하면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고 하는 명상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못하겠어서 포기했다.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온갖 잡생각을 막을 길이 없던데 다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여 명상이 절실하게 필요해 질 때, 대신 이어폰을 꼽고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듣는 편이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잡념을 날리고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명상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잠들기 전 유명 유튜버의 ASMR을 켜 놓으면 비교적 달달한 잠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ASMR을 접하게 되었을 때,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뭐, 이렇게 힘들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동안에도 작은 돌파구를 나름 만들어 내어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인생이 뭐 별거 있나. 이렇게 끌고 갈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거지.     

 또 다른 코로나, 오미크론이 날개를 펴려는 이 순간 연말의 모임이나 여행의 꿈은 다시 고이 접어두고 나는 오늘도 수영을 갔다 와서 호떡을 구워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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