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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Dec 31. 2021

날씨 좋은 2021년 마지막 날

 2021년이 하루 남은 날, 누워서 글을 쓰는 방법을 찾아냈다. 림프부종이 계속 진행 중인 나는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장시간 서 있거나 앉아있는 일을 가급적 피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취미 또한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여있던 셈이다.

 현재 노트북을 누워서 볼 수 있는 거치대에 고정시켜 놓고 데스크탑에 연결되어있는 키보드를 따로 빼 와서 사용 중이다. 배 위에 독서대를 올려놓고 그 위에 키보드를 얹어서 팔과 어깨는 아프지 않도록 배려(?)했다. 마음 내킬 때 어떻게든 글을 써보겠다는 일념으로 고안해 냈는데 스스로 여자 맥가이버라며 폭풍 칭찬 중. 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도 하체가 땡땡 부어터지는 것보다야 이 어색한 자세로라도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낫겠지.     

 

 몇 주 전 올해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푸념하는 글을 끄적거렸지만 사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격리된 듯한 생활을 한지 2년 정도, 사방이 고요하고 적막하기 짝이 없어도 어쨌든 살아있는 생명이니 정체되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일상도 아주 조금씩은 변화하고 있다.      

 



  올해엔 우선 주식 트레이더를 한답시고 그동안 피땀 흘려 벌고 저축해 놓은 돈의 절반 이상을 날려 먹었던 일이 있었다. 개미지옥이라고 불리는 이 바닥이 무섭다는 얘기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많은 개미들이 그렇듯 나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자만심이 불러온 참사를 나 또한 겪고 말았다. 이곳은 인터넷 강의 찔끔 듣고 공부 몇 번 휘리릭 해서 뛰어들어도 되는 바닥이 절대 아니었다. 통장 잔고의 70%가 날아가자 비로소 깨달았던 사실..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미친 듯 공부하고 연습하고 또 매달렸다. 


 정신 차렸으면 그만두었어야 했을까? 그러나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된 나로서는 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다. 이건 수익을 낼 수 있는 실력만 갖춘다면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쨌든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라는 얘기잖아. 시장에서 스스로를 퇴출시킬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다 깡통 차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들었지만 고수들도 모두 깡통한번씩, 심지어는 두 번 이상을 차 본 사람도 있다더라. 그러나 멘탈이 지극히 약한 나는 그 지경까지 갔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발끝을 통과해 지하실로 달려가던 계좌가 어느 순간 마이너스를 멈추고 손실 본 금액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원금을 다 회복하고 온전히 플러스로 전환되는 날 해외여행 한 번 가주겠다고 결심했다. 코로나라도 뚫고 갈 것이다.     

 

 30분을 걷는 산책조차 부어오르는 하체를 마주해야 했던 내가 찾아낸 운동은 수영이다. 아무 운동도 하지 않고 시체처럼 지내야 하는 건가, 막연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터에 수영장이나 바다와 같은 거대한 물속 환경은 부종에 대한 충분한 압박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 안에서 몇 시간을 숨이 넘어가도록 격하게 운동해도 매끈한 하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꾸준히 지속하면 신체의 모든 군살이 정리되고 먹어도 살 안찌는 체질로 바꿔주는 고마운 운동인 수영은 게다가 너무 재미있기까지 하다. 해도 해도 배울 게 새로 나오는 수영은 이렇게 디테일한 기술이 많은 운동이란 걸 몰랐었다. 아주 디테일한 차이에도 속도가 확 달라진다. 기록을 0.1초라도 더 단축시키려는 선수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노력이었지 운이 아니었다. 찰랑거리는 물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수영은 잘 배워두면 휴가철에 두 배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게도 해 준다. 호캉스 떠난 호텔 수영장에서 폼 나게 수영할 수도 있고.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사는 게 약간씩은 재미있어 지고 있다. 프리다이빙에도 입문해 보고 나와 잘 맞는다면 강사 자격증까지 따볼까 생각 중이다.     

 

 작년에 했던 림프부종 수술 후에도 부종이 계속 진행되는 것 같아 올해 재수술을 받았지만 담당교수와 소통 오류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이 일도 올해 나의 이슈 중 하나. 아, 수술이 한두푼도 아닌데.. 짜증나고 절망스러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곱씹어 봤자 나만 괴롭히는 꼴, 현재 다른 교수를 찾아 다시 수술 상담 중이다. 난 한 번 꽂히면 머릿속을 떠날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다. 집요하고 뒤 끝 있단 말이야.      




 우울증으로 대인기피증도 생겼었는데 지금은 사람들도 만나고 같이 놀러도 가고 싶어졌다.  암에 걸리고 수술 부작용이 온 이후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씩씩하려고 노력했지만 꽤 오랜 기간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에 박살난 주식계좌도 톡톡히 한 몫을 했다.) 때마침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줘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변이 바이러스까지 막 창궐하여 혼자 막 흐뭇해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 그동안 고마웠지만 코로나와는 이제 헤어지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내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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