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그레이스>를 읽고
‘어떻게 이 암울하고 무거운 살인사건을 이렇게 웃기게 쓸 수 있지?’
소설 그레이스를 읽으면서 약간은 당혹스러웠던 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가장 매력적인 재능이기도 하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사회 계층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하녀가 강력살인사건의 주범이 되었던 스토리를 흥미진진함을 넘어 매우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었다. 그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돌려 까는 방식으로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세상과 그 편의를 누리는 기득권자들을 희화화 시켰고 이런 방식을 통해 그들을 마음껏 조소했다. 때로는 주인공의 나이가 의심될 정도의 소녀적 감성으로 이야기 하는 살인 의심범(?)인 주인공을 보면서 작가가 그들을 얼마나 바보취급하고 싶어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재기발랄한 위트와 유머감각에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700페이지가 넘는 길고 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레이스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매년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라고 한다. 이미 맨부커는 수상했으나 사실 진작에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남았을 텐데 매번 노미네이트만 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착하고 얌전하게 구는 것은 다리 밖으로 떨어져 그 끝에 매달려 있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잖아요. 겉보기에는 꼼짝 않고 그저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력을 다하고 있는 거잖아요.’
소설 거의 초입 부분에 나오는 이 두 개의 문장은 이 작품의 전반적인 주제를 다 얘기해 줬다고 해도 무방한 대목이다. 가장 조용한 사람의 내면이 가장 시끄러운 법이라 누군가 얘기했던가. 정숙하고 반듯한 품행을 유지하는 내면에는 노선을 이탈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만큼’의 고통과 억압이 가해지고 있다는 작가의 통찰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착하고 얌전하게만 보이는 그레이스가 자신이 일하는 저택의 주인과 그의 정부를 둘 다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점은 누구라도 믿기 힘든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180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당시 그레이스 마크스는 실제로 동료 하인을 사주하여 주인과 그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명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레이스의 흠 하나 잡을 곳 없는 품행 때문에 당시에도 무수한 논란과 억측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이 사건은 역대 어느 살인 사건보다 유명세를 탔던 터라 캐나다인 중 그레이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얼핏 들었으면 그레이스가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터의 주범이라도 되는 줄 알았겠다.
그런데 말입니다.. (?) 만약 반듯하고 정숙한 그레이스의 모습이 다분히 그녀의 의도에 의해 연출된 모습일 뿐이었다면 어떤가? 그렇다면 얘기는 소름끼치고 흥미진진한 스릴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녀가 무죄이길 바라는, 또는 그렇게 추측하는 대중이 자신에게서 그들이 원하는 품행,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저 연출해 줬던 것뿐이라면? 얘기가 그렇게 된다면 감옥에서 보냈던 20년 넘는 세월동안 그녀는 자신의 야수같은 본성을 감추고 말 그대로 다리 밖의 끝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줄곧 사력을 다했던 셈이다.
마치 이야기꾼인 냥, 모든 얘기를 섬세하고 맛깔스럽게 풀어가는 그레이스는 정신의학박사 조던의 모든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조던이 듣고 싶어 하는 결정적인 단서는 단 하나도 제공하지 않는다. 조던이 그레이스의 입담에 흠뻑 취해 거의 무아지경으로 이야기에 몰입한 후 돌아오는 길목에서는 자신이 매번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는 대목에서 독자로서 나는 그레이스가 얼마나 치밀하고 지능적인 인물인지 자연스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료 하인에게 살인의 모든 과정을 사주한 그레이스가 자신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억측하는 바보같은 의학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던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모두를 조롱하고 있었다. ‘어디 내가 범인인지 증명해봐, 단 하나의 단서도 주지 않을 테니.’ 그녀의 암묵적인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듯 보였다. 내 생각으로 그레이스는 겹겹이 쌓인 분노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자신이 닭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순수하고도 순결한 인물이라는 점을 어필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대중에게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지능적이고 영리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하인이자 여성이었던, 사회의 바닥 중 가장 밑바닥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상습적인 성폭력과 함께 이중으로 가해졌던 억압으로부터 폭발했던 거라고, 그래서 우발적이자 한편으로는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고 이후에 감형을 받아야 했기에 평소 익혀왔던 바른 품행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치밀한 인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책 속에서 그랬듯이, 실제 세간의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내가 집중했던 건 유독 그레이스 사건에서만큼은 살인사건 자체보다는 살인이 일어난 배경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쏠렸다는 점이다. 여기서 배경이라는 것은 온갖 종류의 뒷이야기를 일컫는데 범인의 신상부터 살인 동기와 과정의 시시콜콜한 디테일 등이 될 수 있겠지만 재미있는 건 살인범이 그레이스와 같은 여성일 경우 대중은 그녀의 ‘애정관계, 삼각관계 파헤치기’에 훨씬 더 흥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범인이 누구와 내연관계였고 어떻게 남자를 꼬셨으며 꼬신 남자를 어떻게 사주했느냐’ 가 진범인지 아닌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해 보였다. 이 과정에서 살인범은 팜므파탈의 매력을 지닌 악녀가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순진하고 나약하여 사건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억울한 성녀가 될 수도 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이 둘 사이에 중간은 없다는 거다. 팜므파탈의 마력을 가진 악녀, 그게 아니면 순수한 성녀. 살인범에게 중간 인격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 살인범은 본의 아니게 전국에 걸쳐, 때로는 세계와 세기를 걸쳐 무지막지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세 개의 살인 사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스토킹 살인사건의 범인 김병찬, ‘노원구 세 모녀 스토킹 살인마’ 김태현 그리고 가평계곡 남편 살인사건의 범인 이은해, 이 세 건은 모두 2021년부터 22년까지 텀을 짧게 두고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화제의 살인 사건이었다. (퀴즈) 당신이 이 중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이 접했던 사건은 무엇이었으며 그래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셋 중 누구의 이름이 머릿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가?
김병찬과 김태현의 스토킹 살인사건은 사건 그 자체만 간략히 압축하여 접했던 터라 살해 수법이 매우 잔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건도, 그들의 이름 세 글자도 내 기억에 이은해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반면 이은해 사건은 사건의 전말 뿐만 아니라 살인동기와 배경, 내연남과의 관계 등이 구구절절하고도 매우 자세하게 반복되어 뉴스에 보도되었다. 뉴스만 틀면 보고싶지 않은 그녀의 인스타 사진 여러 장이 반복적으로 나왔던 터라 이은해라는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리에 박히는 고문(?)을 당했다. 살인범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경우 대중은 그녀를 둘러싼 막장스토리에 막대한 흥미를 갖는다. 그 스토리에 살을 붙이면 붙일수록 막장의 주인공은 점점 더 크게 유명해진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여성 살인범을 보는 시각이나 사건을 보는 관점이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생각과 함께 과거 시대를 인용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신랄한 비판과 풍자방식이 더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었던 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