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성 연쇄살인범의 초상' 리뷰
근래 들어 여성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책 서너 권을 선정하여 한 달 간격으로 리뷰와 토론 모임을 하는데 세 시간 동안의 심층토론이라 깊이도 있으면서 꽤 재미가 있는 편이다. 참여하는 주제 중 하나가 ‘여성 살인마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고찰(?)’인데. 지난번 소설 ‘그레이스’에 이어 이번엔 ‘여성 연쇄 살인범의 초상’이라는 책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 책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었던 그레이스와는 다르게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으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성비로 볼 때 살인범의 2%밖에 되지 않는 여성 살인범들의 살인행각을 읽어나가려면 일단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난 이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평화와 공존을 더 지향한다는 여성의 성향에 대한 믿음을 앞세우거나, 혹은 남성살인마에 비해 그 비율이 2%밖에 되지 않는 수를 미미하다 생각하여 이들이 저지른 살인행각이 상대적으로 덜 잔인할거라 상상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이 여자들의 살인파티와 그 과정에서의 잔악함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극악무도함에 연신 놀라면서 책을 읽어나갔지만 읽을수록 나의 정신건강에 독극물을 끼얹는 느낌이어서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이들을 유형별로 나누어보자면 이렇다.
첫째, 중세부터 근대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갖고 태어난 귀족신분으로서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을 저지할 수 있는 세력이 전무하거나 혹은 거의 없을 때 못된 인간이 어디까지 악마가 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유형이다. 1500년대 헝가리 귀족이었던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1800년대 후반 러시아 귀족이었던 다리야 니콜라예브나 살티코자가 그러하다.
이들은 거실 바닥이 깨끗하지 않거나 자신의 기분이 별로였다는 이유, 혹은 그저 심심해서 단순히 오락거리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수백명의 하녀와 농노를 고문, 살해했다. 이들의 고문 방법은 매우 잔혹한 모습을 띤 채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는데 임신한 하녀를 유산할 때 까지 채찍으로 때려 살해, 하녀의 머리카락에 불을 붙여 고문, 죽을 때까지 매질하여 살점이 뜯겨 나가고 온몸에 있는 피가 다 빠질 때까지 학대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즐겼다. 사이코패스가 사회적으로 힘을 가졌을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둘째, 재산을 불려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서 결혼에 결혼을 거듭, 그때마다 남편을 독살하여 갈아치우는 유형이 있었다. 의학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근대에 이르기까지 젊은 나이에 요절하거나 어린 시절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던 사람이 많았기에, 독을 사용한 살해는 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끊임없이 남자들을 유혹하고 더 나은 조건의 남편으로 갈아타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전 남편을 비소가 든 밥상과 간식으로 쉽게 처리했다. 이들 중 메리엔 코튼이라는 여성은 남편뿐만 아니라 의붓자식, 심지어는 자신이 낳은 친자식들마저 차례대로 독살했다. 피임이 간단하지 않았던 당시에 메리앤 코튼은 어쩌다 낳았던 아이들의 육아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 사이코패스형이었으므로 자신의 앞길에 걸리적거리거나 혹은 화나게 하는 모든 이들을 독살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살인이 즐거웠을 것이다. 1900년대 초 미국 앨라베마주 출생이었던 내니 도스는 자신이 살해한 자식과 손자들, 남편들의 비석에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지어주기를 즐겼다고 한다. ‘아가야, 네가 정말 그립구나.’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거예요,’ (웃으면 안 되지만 이 대목에서 웃고 말았다.)
셋째,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폭력에 노출되느니, 차라리 강자 쪽에 붙어 가해자가 되는 편을 선택한 부류이다. 적극적으로 매춘사업을 확장해 나갔던 독사자매 라야와 사키나가 그러했고 발레리나들을 거느리며 고급 창부사업을 하며 매춘부들을 학대, 살해했던 물레이가 그랬다. 이들은 당시 여성으로서 단연 최고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매춘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었고 직업 특성상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파악하여 스스로 성을 제공하는 매춘부보다 영리하게 포주의 위치에 서는 쪽을 택했다. 특히 물레이는 자신의 매춘부들이 아무에게나 강간당하도록 내버려 두었고 귀찮은 가축처럼 굶겼으며 그들이 폭력적인 손님의 비위를 거스르기라도 하면 철저히 손님 편에 서서 여자들에게 모진 학대와 고문을 가하다가 짐승처럼 죽였다.
지금까지 책에서 묘사된 잔학함의 반도 얘기하지 않았다. 가히 희대의 살인마들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충격, 경악에 동반하는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분노였다.
저자가 선택하여 소개한 이 살인마들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방어살인을 한 케이스도 아니었고 살인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여성들도 물론 아니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이자 사이코 패스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 따위는 가리지 않는 악마였다. 내 주위에 숨어있다가 존재를 알아챘다면 오금이 저렸을, 희대의 악마들이었다. 이들을 접했을 때 자연스러운 감정은 ‘무섭다, 공포스럽다, 경악한다.’ 인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책이 짚은 키포인트는 후대로 갈수록 이 희대의 살인마들은 세간 사람들에게 다르게 인식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저자의 집필의도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는 요즘 남자들이 하는 ‘바이오하자드 8’이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재탄생했다. 그녀는 좀비인지 드라큐라인지 모를 슈렉과 같은 푸르딩딩한 얼굴에 무지막지하게 큰 가슴을 한껏 내밀며 잘 때나 입는 슬립드레스를 입고 운전석에 앉아, 시뻘건 립스틱을 바른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입술로 게이머들을 응시하고 있다. 수백명의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던 살인마가 갑자기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되어 나타났다는 점이 사실 재미있지도 않고 그리 놀랍지도 않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르네상스시기의 카라밧지오에서부터 현대의 클림트에 이르는 수많은 남성 화가들로부터 치명적인 팜므파탈로 묘사된 것만 보더라도 여성 살인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계속 그래왔다는 것은 못마땅하면서도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왜?’라는 물음에 명쾌한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 사회가 그저 우리 여자들을 성녀와 악녀, 정숙한 여성과 창부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구분하는 것을 대단히 선호하므로 ‘악녀=창부’ 의 등식이 성립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여성 살인범에 대한 공포를 사회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이유라는 점이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여성 살인마의 이미지를 성적으로 왜곡시킴으로써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덜어내고 누그러트리는 효과를 얻었다. 사람의 머리카락과 발가락 사이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이고, 살점이 떨어지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때려서 죽이는 이 악마적인 살인자들에게 느껴지는 공포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느니, 차라리 성적 대상물로 바꾸어 두려움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한 결과물이라는 점, 팜므파탈 살인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이 꽤나 설득력 있게 와 닿았다. 가터벨트를 차고 페티시를 불러일으키는 슬립을 입은 채 채찍을 휘두르는 살인자들, 그렇게 만들면 하긴, 뭐가 무섭겠어? 그들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아닌, 정복하고 싶은 존재로 둔갑한다. 이런 점은 숱한 남성살인마들을 영화화하여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은 물론 천재적이다 못해 전설적인 살인범과 같은 이미지로 격상(?)시키는 방식과는 명확하게 대조된다. 유영철, 이춘재와 같은 남성 살인마를 소재로 등골이 서늘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어 관객 천만을 모았다는 점이 그렇다. 유영철 역을 맡은 하정우가 팬티만 입은 채로 잔근육의 섹시한 몸에 오일을 바르고 망치와 칼을 휘둘렀다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을 것이다. ‘와우!’ 라는 감탄사가 나왔겠지.
나는 위 세가지 유형의 살인마들 중에서 세 번째, 특히 약자의 위치에서 당하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프랑스 군인의 편에 서서 자신과 같은 성매매 여성들을 착취하고 거리낌 없이 살해한 물레이가 가장 죄질이 나쁜 악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레이는 후대 프랑스 남성들에게 발레리나 의상을 입고 모로코의 이국적인 페티시를 자극하는 ‘밤의 종달새’이자 팜므파탈로 남게 된다.
다음 장에서는 남편을 금전과 인생도약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 ‘도구적 살인’을 저지른 두 번째 유형 여성살인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