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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소설가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얘기하는가.

소설 '그레이스' 리뷰 2편

by 이라IRA


‘도라-돼지-햄’


자신에게 매우 불친절한 하녀 도라에 대해 머릿속으로 이와 같은 연상작용을 일으키며 소심한 복수를 꾀하는 아이 같고도 귀여운 조던박사의 모습,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이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 지려고 할 때쯤이면 이런 방식의 유머를 구사하면서 스토리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는 한다.

그레이스가 어머니 장례를 앞두고 시체를 감싸는 시트의 퀄리티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장면에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살면서 항상 자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니 시체에 헌 시트를 쓰기로 결정했어요.‘


그 후 타고 가는 배 안에서 거대한 태풍을 만나고는 죽은 어머니가 자기에게 헌 시트를 써서 분노한 것 같다는 딸의 추측에 또 웃음을 터뜨렸다. 죽는 순간까지 한 가정의 가장 밑바닥의 위치에서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동서양 모든 어머니의 모습을 암시하는 이 슬픈 구절을 어떻게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안에는 세상을 관조하는 듯 성숙한 시선을 가진 그레이스가 순간순간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생각과 시선을 쏟아냄으로써 자신을 관찰하고 진범여부의 실마리를 잡아내려는 조던 박사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있다는 암시도 숨어있다. 캐릭터 설정에 있어 그레이스의 치밀함을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소설 곳곳에서 이런 식으로 재미있고 영민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작가의 이런 방식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홀린 듯이 취해 소설을 읽어나갔다.


이 밖에 이 음울한 스릴러를 읽으면서 미친 여자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던 문장들을 몇 개 더 기록해 보고 싶다.

’메리는 숲속에 숨어 인디언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머리껍질을 벗기자는 계획을 농담처럼 세웠고 마님의 머리를 벗기고 싶지만 그래봐야 가발을 쓰고 있으니 헛수고라고 했어요.‘

‘이브에게 주어진 진짜 저주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리가 아니라 무슨 문제가 생기자마자 그녀 탓으로 돌렸던 바보 같은 아담을 참고 견뎌야 했던 거라고 말했어요.(메리가)’

이쯤 되면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지경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페미니즘의 소설가로 유명하다.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거론될 만큼 수려한 필력과 함께 우리 사회의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면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때로는 우회적으로 돌려 까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설적이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모든 표현 방식이 너무도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라는 데에 연신 감탄했다. 불편한 얘기를 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폭발적인 웃음까지 이끌어 낼 줄 아는 그녀는 매우 영리하고도 천재적인 작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소설 그레이스에서 침대에 관한 주인공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었다. 아기가 막 태어나자마자 인생 최초의 위기감을 맛보는 곳이자 부끄러운 이성간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고, 누구는 절망이라고, 또 누군가는 참아야 할 모욕일 뿐이라는 말하는 이 대목은 꽤나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는 그레이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매우 직설적이고 통렬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부부간의 섹스일지라도) 겉모양으로는 양성간의 합의 하에 진행되는 것 같은 무수한 섹스가 실은 그저 한쪽만의 욕구해소를 위해서, 또는 한쪽의 자존심을 배려하여 참고 견딜 뿐이라는 꼬집기는 여자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로 일방적인 ‘봉사’ 나 다름없는 성격의 섹스가 주위에 꽉 찬 습기처럼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분명하게 알고 있고 또 이를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다. 사이먼 조던이 그 묘사 부분에서 잠시 멈춰달라고 주문한 걸 두고 사이먼이 침대 얘기에 대해 흥미진진해 하는 것 같다고 추측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또 웃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 다들 귀여운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중에서 그나마 가장 진보적이고도 신사적으로 보였던 사이먼 조던 박사조차도 그레이스가 일등 신부감이라고 평하는 부분에서는 사실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예쁘지만 천박하지 않고, 고분고분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검소하고 진중하며 생각이 깊다. 게다가 뜨개질도 잘 해서 가난한 점만 제외하면 일등 신부감이다.’

그러고 보면 그레이스는 현대에 태어났어도 우리나라의 ‘듀오’와 ‘가연’과 같은 결혼 시장에서 단연 일등 신부감이 되었을 것이다. 이상적인 여성상의 변천은 현대문명과 테크놀로지라는 토끼가 저 멀리 뛰어가서 고지를 찍든 말든 한없이 느릿한 거북이 마냥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다.


생일을 맞은 그레이스가 자신을 짝사랑하는 제이미와 건전(?)한 소풍을 보냈던 시간을 알고보니 저택의 모든 남자들에게 관찰당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뭐가 그리 궁금하길래..?) 새삼 여기에서 샤르트르의 ‘타자 이론’이 생각났다.

생일을 맞아 데이트를 즐겼던 주인공이 만약 그레이스가 아닌 맥더모트나 제이미와 같은 남자 하인이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지대한 관심과 관찰의 대상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들이 소풍가서 싸갖고 간 김밥을 먹던 말던, 술래잡이를 하던 말던, 심지어는 풀밭에서 애인이랑 뒹굴던 말던, 누군가로부터 감시와도 같은 관찰의 대상이 되었을지의 여부를 얘기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들은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았을 터였다. 그들은 그저 그 행위를 한 주체일 뿐이며 그래서 타인이 타자화 하기에 그들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언제나 존중받는다. 어느 스토리에서든 그들은 샤르트르의 ‘타자’이자 대상이 아닌 ‘대자’이자 ‘주체이다.


반면 여성은 모든 행동, 특히 성적인 사생활 부분에서만큼은 언제나 타자화 되고 대상화 된다. 흥미진진한 관찰의 대상이자 여주인공..?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우리(여성)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스스로마저 대상화시키는 관점을 취하면서 주체자와 그들이 규정해 놓은 사회통념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성적인 화제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다. 이 얘기를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자신의 성과 함께 항상 자신의 몸도 함께 통제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소설 그레이스에서는 코르셋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재미있고도 충격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 있다.

‘여성의 몸은 척추가 약하고 흐르는 젤리와 같아서 밧줄 같은 것으로 꽁꽁 묶거나 고정시키지 않으면 녹은 치즈처럼 바닥에 쓰러진다는 통념이 있었다.’

이건 진짜..실화인가? 난 이 부분에서는 아예 실소를 터뜨렸다. 흐르는 젤리와 같은 연체동물이라면 그냥 바다에서 살았겠지, 아니 그러한가. 코르셋을 거의 입지 않는 지금의 여성들은 척추가 다들 튼튼하게 진화한 모양이다. 젤리같은 부분은 여성의 가슴뿐이니까 말이다.

그럼 브래지어는 어떨까. 브라는 그야말로 ‘흐르는 젤리’와 같은 무척추의 여성 가슴을 꽁꽁 묶어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해 주고 있을까? 이 부분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과거 코르셋에 대한 왜곡된 인식처럼 현대 여성이 당연하듯 착용하고 있는 브라조차도 왜곡된 통념 하에 우리를 구속시키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해 볼만은 하다.


나도 한때는 브라를 착용하지 않으면 ‘흐르는 젤리와 같은’ 가슴이 흘러내리고 쳐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독립하여 혼자 살게 되면서 집에서 브래지어를 벗어놓고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그게 거짓이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그냥 그 위치에 그대로 있던걸..? (70년대 유럽에서 괜히 브래지어 착용 거부 운동을 벌였던 게 아니었다.) 브래지어도 마찬가지로 이성에게 성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우리의 신체부위를 (튀어나온 유두는 보기 좋게 감추면서) 더욱 풍만하고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억압적 도구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수영을 다니면서도 성별로 수영복이 다른 점 또한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도 수영장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남자들의 모습이 민망한건 나뿐인가. 그들의 벌거벗은 몸은 왜 그렇게 당당한 거냔 말이다. 그들의 몸을 제발 유두라도 가리는 선에서라도 상의 가리개(?)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다. ‘가릴거면 같이, 그게 아니면 벗을거라도 같이’ 내 가슴이 성적대상물의 ‘타자화’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그런 사회통념의 전환을 원한다. 몸의 반을 타이트한 소재로 꽁꽁 싸매고 수영을 하려면 물속에서 종종 숨이 막힌단 말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와 직접 대면하고 얘기하면 얼마나 무수한 얘기가 쏟아질까. 얼마나 많은 공감과 위로, 격려와 연대감이 느껴질까, 그러면서도 얼마나 재미있고 웃기고 또 슬플까를 잠시 상상했다. 그녀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책을 통해서라도 그녀와 대화하는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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