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나뭇잎들이 살랑거린다. 초록한 잎들 위로 하늘은 언제부터였는지 벌써 저만치 높아져 있다. 가을이다, 완연한 가을. 다이나믹한 한국의 자연은 접하는 매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저 쾌청한 가을날씨는 지금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 직장인이었을 때, 사무실 안에서 햇빛 한번 못 쬐어본 말간 얼굴로, 눈부신 바깥이 그저 가상세계인 것 마냥 굴었었던 그때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의 종목이 떨어지는 순간, 가을 날씨의 청량함은 나와는 상관없는, 가상세계로 전락하고 만다.
진짜 금융위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천장이 어딘지 모르게 튀어오르는 환율과 금리, 단 며칠 만에 뛰어오르는 식료품의 가격이 실감이 나지 않는데, 이것이 본격적인 경제위기의 초입단계일 뿐이라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그저 가상세계만 같다. 이렇게 현실감각 없이 매일 트레이딩을 하고 있으니, 줄 없이 번지점프를 하는 꼴이다. 차라리 창밖으로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현실감각이 약간은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 HTS를 켜는 일은 매일 전쟁 속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회사생활 때는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의지라도 할 수 있지만 HTS 화면 앞에는 나 혼자밖에 없다. 내가 산 종목들은 누군가에게 물어봐서 처리할 수 없다. 누가 나대신 판단해 주겠다는 리딩 방에 들어갔다가는 그 길로 망하는 지름길에 들어선 꼴 난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아, 이게 아닌가?) ,내 계좌를 절대 누군가가 관리해 줄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오로지 혼자 판단하고 혼자 지르고 혼자 팔아야 하는, 주식은 외롭고 지리한 자신과의, 자신만의 싸움이다.
심하게 내향성인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면 이런 방식이 차라리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웬걸, 시장으로부터 몇 번 뒤지게 두들겨 맞다 보면 적성이고 나발이고 이놈의 세계를 증오하게 된다. 요즘처럼 장세가 좋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마치 미국이라는 거인이 재채기라도 한번 하면 우리는 바로 독감에 걸릴 것처럼 만반의 태세를 갖춘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요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미국장이 어떻게 끝났는지부터 체크하는데 마치 폭풍전야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영 좋지가 않다. 매번 얘기하지만 이럴 땐 관망하는 게 최선이지만, 모든 주식쟁이들이 그렇듯, 손가락을 자르지 않는 이상 관망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뭐라도 사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이 차라리 나으려나. 그건 몸이 망가지지만 매매중독은 계좌가 망가지니까. 이놈의 세계를 증오하면서 빠져 나올 수도 없는 애증의 관계, 에휴, 한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