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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포갤러리 Dec 10. 2022

여든셋




Story/Mixed media




선생님.


그 때. 제가 왜 그랬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기다리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심장보다 늦게 작동되는 현실에서

기다림은 굶주림보다 싫었다고 고백합니다.


지금껏

기다림에 인색한 저를 이해나 오해보다

아예 무관심했던 선생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이제서야 그것은 터무니없는 자비를 바라는

저의 감정실수임을 고백합니다.


원망의 기억도 희미해진 어느 늦은 가을날.

취해서 귀가하다 주신 전화를 받고

이제는 이름 정도 기억하는 멀고 먼 사이인데

서로에게 쌓인 매듭은 어쨋든 풀려야

잊혀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래서

제가 시작한 잘못을 이제서야 사과드립니다.

이웃에 곰세마리가 탈출했으니

나가지 말라는 문자를 받고 더 나가고 싶은

이 삐뚫어진 심성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렇지만

배우고자 욕심부린 기억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두뇌에 자리잡은 혹 때문인지

이제 미움도 사랑의 기억도

언제나 바람부는 내심의 비아냥도

아주아주 희미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맞는 길인가?'매일 의심했지만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이 맞으며

다시 간다해도 이 길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지내신다는 소식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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