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기억은 때때로
슬펐던 기억은 더욱 가슴 아리게,
기뻤던 기억은 생각만도 뿌듯하게,
우스운 것은 더 우습게...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다.
사람의 시간이란 기가 막힐 정도로 여백이 없지만
시간이 남겨 준 조그마한 불빛에서 찾을 수 있는 기억은
죽을 때도 다 못 가져갈 정도로 많기도 많다.
잊히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 그의 나로서 떠올려질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사람의 사랑을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사랑의 사람을 말하고 싶다.
사실 어렵고 초조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가장 단단했던 애정은 모성애로서의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약효의 약은 모성애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어디에 나오던가?
좌우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너무 사랑스러워 아프다... 는 생각을 가끔 했으니까.
오늘 아이는 덥수룩한 아저씨 모습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뭘 사 올까... 도 묻기도 하고
그 사이 자랄 잔디를 보기 힘들까... 걱정돼 미리 잔디도 한 번 깎고
문단속을 잘하라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부탁도 하고.
그렇게 가는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니
25년 전 유치원에서 첫 캠핑을 보내며
땡땡 내리쬐는 햇볕에 목마를까 싶어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 음료수를 주니
가는 기분에 들떠 손사래를 치는 모습에 훌쩍 뛰어내려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아직도 엉터리 같은 아들이지만 그 엉터리는 무엇 때문인지 나는 만만하지가 않다.
모성애라고? 사랑이라고?
그렇게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머그 바닥에 새겨진 문양이 어떤 분위기의 홀을 상징하듯
뒤집어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아니 생각하더라도
그 알 수 없는 학위 감의 아들에 대한 감정은
도무지 유래가 없다.
홀로 남아 술잔을 들이키니
그 소중함이
마음 가득 고인다.
'행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