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모로, 〈사포의 죽음〉, 1870년경
오늘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다.
나의 견해와 다름이 없는 글을 발견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이런 것을 횡재라고 붙여 둔다.
아름다워라, 저 울분
2006년 7월 30일.
아내와 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었다.
유럽 박물관을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안에서 맥주나 포도주를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와 아내는 박물관 안의 간이주점에 앉아 샌드위치를 안주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쏘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성을 깎은 대리석상이었다.
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나는 포도주를 마시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서린, 아니면 금방 울분을 터뜨릴 듯한 저 여성, 혹은 여신은 대체 누구일까?
먹고 마실 수가 없어서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일어서서 대리석상 앞으로 다가갔다.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의 석상이었다.
여성의 동성애는 원래 레스보스 섬(Lesbos Island) 풍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성애에 탐닉하는 여성들을 ‘레즈비언’, 즉 ‘레스보스 섬 여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스의 에게해 동부, 터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이 섬은 위대한 여류 시인 사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포도 레즈비언 혐의를 받아 왔다.
사포는 기원전 7세기에 활약한 시인이다. 작품 중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 시인의
시적 재능을 엿보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철학자 플라톤이 다음과 같이 찬양했을 정도다.
무사이(뮤즈들)는 모두 아홉이라고 하는데
혹자는 아니란다.
열 번째가 있단다. 보라.
레스보스 여성 사포란다.
‘열 본째 무사이(뮤즈)’로 극찬받던 시인 사포는 시에다 썼듯이 뮤즈들을 연상시키는
처녀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사포의 주위에는 시를 배우려는 여성, 음악을 배우려는 여성들로 들끓었다.
남성들이 사포를 ‘레스보스 섬 여자’로 보려 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포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포는 처녀들을 육체적으로 사랑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지위가 열악했던 그들을
계몽하려 했던 것 같다.
남성들이 비난한 것은 사포가 드러내었을 가능성이 있는 충동적인 성적 욕망이 아니었다.
인간 본성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여성을 가장과 남성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자, 이것이 사포의 의도였다.
남성들은 사포를 비난함으로써 자기네 권위를 지키고자 했다.
사포는 레즈비언이었다기보다는 최초로 여성 해방 운동을 시도한 고대 그리스 여성이었다.
사포는 파온이라는 미남 청년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결국 이 청년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도 남성들에 의해 조작된 전설이기가 쉽다.
남성들은 사포가 맞은 최후의 자리에까지 파온이라는 남성을 세워 놓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포는 ‘레우카디아(레우카스)’의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들은 사포가 ‘연인들의 투신 바위(Lover's leap)에서 투신하면 상사병이 낫는다는 미신을 믿고 투신했다는 주장을 퍼뜨렸다.
사포가 ‘레스보스 섬 여자’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써 사포를 비난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사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더구나 시인이었다.
사포의 아름다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기 그 사진을 싣는다.
예술이란 그런 것.
더 아름답기 위해서 범하지 못할 법칙은 없는 것이다.
나는
사포를 매도한 수컷들을 인간으로 치지 않는다.
......... 이윤기의 <위대한 침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