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시인 동주>
한 시절을 살았던,
한 시인의 이야기
고등학생 때 윤동주의 시들은 늘 어려웠다.
윤동주 시집을 사서 해설을 읽어 보았지만 여전히 머리로만 이해될 뿐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윤동주와 삶과 시를 그려낸 픽션 형태의 소설을 읽으면
그의 시를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때의 문장과 마음을 다시 한 번 꺼내 보았다.
<시인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유년 시절부터 죽음과 그 이후까지 그의 삶을 시와 함께 소설로 엮은 내용이다. 윤동주의 시가 쓰여진 배경을 실제 사실에 상상을 더해 그려내면서, 독자가 그의 시에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게 해준다. 오랜 시간 전에 쓰여진 시의 상황이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이 일어난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동주가 쓸쓸하게 죽은 후, 그의 벗들이 추도회에서 읽은 시 ‘창 밖에 있거든 두드리라’였다.
창(窓) 밖에 있거든 두드리라
-동주(東柱) · 몽규(夢奎) 두 영(靈)을 부른다-
유 영(柳 玲)
동주(東柱)야 몽규(夢奎)야
너와 즐겨 외우고
너와 즐겨 울던
불이도 욱이도
그리고 중이도……
아니 네 노래 한 구절 흉내에도 땀 빼던
영(玲)이도 여기 와 있다.
차디찬 하숙방(下宿房)에
한술 밥을 노느며
시(詩)와 나라와 민족을 말하던
시(詩)와 조국과 겨레와 죽엄을 같이하려던
네 벗들이
여기 와 기다린 지 오래다.
창(窓) 밖에 있거든 두드리라.
동주(東柱)야 몽규(夢奎)야
너를 쫓아 바람곧이 만주(滿州)에 낳게 하고
너로 하여금 그늘 밑에, 숨어 시(詩)를 쓰게 하고
너를 잡아 이역(異域) 옥창(獄窓)에 눕게 한
너와 나와 이를 갈던 악마(惡魔) 또한 물러가
게다 소리 하까마 칼자루에
빠가 고라 소리마저 사라졌다.
너와 함께 즐겨 거닐다
한 잔 차에 시름 띠어
뭉킨 가슴 풀어보던
여기가 바로 다방(茶房) 허리욷
그렇다 피의 분출(噴出)을 가다듬어
원수(怨讎)의 이빨을 빼려다
급기야 강아지 발톱에 찢긴
여기가 바로 다방(茶房) 헐리욷
나는 믿지 않는다 믿지 못한다.
네 없음을 말해야 할 이 자리란
금시 너희는 원앙(鴛鴦)새 모양 발을 맞추어
항시(恒時) 잊지 않던 미소(微笑)를 띠고
너는 우리 자리에 손을 내밀 것이다.
창(窓) 밖에 있거든 두드리라.
그리고 소리쳐 대답(對答)하라.
모진 바람에도 거세지 않은 네 용정(龍井) 사투리와
고요한 봄물결과 같이
또 오월(五月)하늘에 비단 찢는 꾀꼬리 소리와 같이
어여쁜 네 노래를 기다린 지 이미 삼 년(三年).
시원하게 원수(怨讎)도 못 갚은 채
새원수에 쫓기는 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네 벗들이
다시금 웨쳐 너희 이름 부르노니
아는가 모르는가
“동주(東柱)야! 몽규(夢奎)야!”
1947.2.1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에서 1947.2.16. 윤동주추도회에서 낭독
윤동주가 생전 그토록 존경했던 시인 정지용도 그를 찬탄하고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벗들도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동주의 이름을 불렀다. 그토록 내도 싶어했던 시집은 유고집이 되었다. 삶과 죽음의 장막을 잠시 걷어내고라도 전하고 싶은 소식들과 얼굴들이 많았다. 이 찬란한 순간들을 보지 못하고 타국 감옥에서 쓸쓸히 죽어간 동주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의 벗들이 느낄 빈자리의 슬픔이 느껴졌다.
또 그들이 바랐던 광복이었음에도 친일 경찰, 교사, 문학가들이 사과와 반성 없이 한결같은 삶을 누리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은 모두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남아있는 시를 읽는 사람들도 떠나간 동주와 몽규도 모두 이러한 사실에 탄복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동주의 삶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추억된 시였음에도 가장 슬프고 여운이 남는 시였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소설 속 동주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했던 말이다.
앞날을 그려볼 수 없다면 현재의 불안한 삶에라도 충실할 수 밖에
고등학생 때 나는 이 말을 좌우명으로 가져야겠다며 이렇게 적어 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재, 하루하루가 불안해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윤동주처럼 아름다운 시도 쓰고 역사의 한 물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제 강점기의 침울한 현실의 불안한 삶에 비하면 나의 상황은 무척이나 나은 상황이니 불평불만 하지 말고 열심히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달라진 점이라면 내 상황을 타인의 비극이나 희극과 비교하며 위안이나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
그리고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그럼에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는 것.
마음으로 가장 이해하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 시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소설을 읽고 나서야 드디어 이 시가 마음에 닿았다.
그래서 답시를 적었다.
<당신, 윤동주
_알고 있는가 2017.10.24. 자유롭고 평화로운 따뜻하고 포근한 조선>
새겨듣지 않은 시인, 윤동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하지 않았던 당신의 시
오늘 나는 부끄럼을 느낀다
당신이 남의 육첩방에서 그러했듯이
당신의 삶을
당신의 시를
무시했다.
당신이 창백한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갔을 시를
외면했다.
이제야 마주본다.
당신의 시를
당신을
이제야 눈물이 난다.
당신의 삶에
당신의 시에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부끄럽지 않았다.
한 명의 시인과 그의 이야기를 이해해보려는 마음.
그가 허공에 던진 질문을 붙잡아 나름의 답가를 보내는 마음.
단어 하나하나에 담았던 마음을 모두 기억하진 못하지만
단숨에 진심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써내려갔던 기억만은 분명하다.
정말로 나에게는 쉽게 씌어진 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