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이야기

영화 <Été 85>

by 아트필러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인간이 가장 멀리 두고 싶어 하는

하지만 항상 같이 붙어있는 두 가지,

사랑과 죽음에 대한 것이다.


그 해 여름, 친구는 사랑에 빠졌고 알렉스는 바다에 빠졌다. 관심 분야였던 ‘죽음’이 넘실거리는 파도가 되어 다가오던 그때 ‘다비드’가 등장한다. 극적으로 등장한 여유가 넘치는 구원자는 물에 뛰어드는 극적인 방식으로 구해주진 않는다. 대신 셔츠를 풀어헤친 채로 젖은 바지를 건저 올리고는 뒤집힌 배를 다시 뒤집을 방법을 이야기해 준다.


해변으로 돌아온 뒤부터 상황은 거부할 수 없이 휘몰아친다. 갑자기 찾아왔던 폭풍우처럼 알렉스는 다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집으로의 초대, 묘하게 부담스러운 다비드의 엄마,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욕실, 망설이는 사이 잡힌 다음 약속, 같이 일하자는 제안. 모든 게 너무나도 갑작스럽지만 정신 차려보면 다비드의 말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지만 말을 고를 표현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걸어 속도를 늦춰보려 애쓰지만 먹히지 않는다. 완전히 헛수고다.


ⓒ 네이버 영화


사랑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짧게 머문 시선, 스치듯 닿은 몸, 그 찰나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렸으니까. 더 이상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생각을 멈추고 그저 내맡기게 만든다. 알렉스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에 사랑에 빠진 눈,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눈, 다신 되찾지 못할 그 여름의 눈. 본능적으로 위험한 사람이라는 경고와 동시에 핑크빛 노을처럼 몽글몽글한 예감이 함께 다가온다. ‘나 경계해?’라는 다비드의 물음은 ‘날 사랑하는구나.’라는 말이었겠지. 다비드는 그런 불안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를 느껴본 사람은 그걸 알 수 있다. 또 그런 사람만이 오히려 사랑과 죽음 앞에서 가벼워질 수 있다.


질투라는 건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상대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으면서도, 그런 점에 사랑에 빠졌으면서도, 비슷한 상황을 보고 실망한다. 나에게만 그랬으면, 내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한 때는 그 사람에게 타인이었고,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그 모순 사이에서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알렉스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점도 어느 정도 이 관계의 파국을 예고한다. 글쓰기란 풀리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끈질기게 따라가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외면하거나 무의식 속에 숨겨두는 걸 굳이 끄집어내서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헤쳐놓는다. 작가들의 관심 분야가 ‘죽음’인 것도 그런 이유다. 모든 삶의 궁극적인 결말 속에서 한 개인의 답을 찾고자 한다. 그런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약간 진지해지고, 조금 우울해진다. 반면 그 반대의 감정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감정과 생각의 극단을 오갈 수 있는 사람에게 다정한 사람은 위험하다. 유한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이라서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기대하게 만드니까.


ⓒ 네이버 영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내가 어떻게 널 외면할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 질문만 반복하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그건 내 삶이 아니잖아.”라는 말은 더 이상 힘이 없다. 내 삶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알 수 없어진다. 분명히 선명했던 초점이 흐려져 몸과 마음은 아무 데나 마구 들이박는다.


그렇게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거부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얼빠진 맹세와 약속들로 쌓여간다. 사랑이 사람의 눈을 멀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육감적인 이해에 눈 뜨게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알게 하는 것들이 있다. 알렉스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맹세의 의미에 대해 갑자기 깨달은 것처럼.

ⓒ 네이버 영화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지만’으로 시작되는 바람에 끝맺지 못했던 문장들도 쌓여간다. 사랑의 끝이 서서히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랑하니까 외면했던 문장들이 기어코 마음을 짓누른다. 배에 탈 때 그 애의 손을 잡고, 내게서는 가방 끈을 잡는 순간을 기어코 알아차리게 만든다. 기어코 서운함을 혀 끝으로 꺼내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게 만든다. 기어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장 슬픈 순간으로 바꾼다.

ⓒ 네이버 영화


그 해 여름의 끝, 죽음이 깜빡이도 없이 두 소년을 덮쳤다. 죽음을 비웃어주겠다는 소년과 죽음을 흥미로워했던 소년에게.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다. 누가 더 아팠는지, 슬펐는지, 분노했는지, 후회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제 다시는 서로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여름의 두 소년은 이제 기억으로만, 문장으로만 존재한다.


두 사람을 갈라놓은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사랑으로 엮어주었던 것이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글을 쓰던 알렉스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다비드는 아버지의 ‘죽음’이 드리운 삶을 살고 있었고, 두 사람이 사랑을 약속한 밤, ‘죽음’에 대해 맹세했다. 두 사람에게 사랑과 죽음은 늘 같이 있었다. 사실 모두가 그렇듯이.


알렉스는 글을 쓰면서 사랑과 죽음이 같이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해 여름에는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담당 교육관에게 글을 보여줄 만큼, 선생님에게 다비드가 유혹했냐고 물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알렉스는 그 이야기를 끝맺을 준비가 되었다.

결국 알렉스를 구원한 건 사랑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였다. 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그게 이어지는 다음 챕터가 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쓰는 사람조차도. 하지만 그는 계속 사랑에 대해 쓸 것이다. 죽음이 정말로 그의 손을 멈추게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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