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낙원

2026년 2월 8일 / 일요일 / 날씨: 주말의 햇살 유난히 더 따듯

by 아트필러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질 땐

익숙한 세계로

도망치는 편이다.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손에 집히는 대로

일단 도망치고 본다.


오늘의 망명지는

그래픽 노블 <ALONE IN BANGKOK>이었다.


생기 넘치는 그림과 연출,

보드라운 책의 겉표지까지

애정과 정성이 가득 담겨있어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두 개의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간 부분이었다.

망명지에서는 늘 새로운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을 꿈꾸는 것'과 ''현실에 안주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도망치는 일일까?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넘어도
나 역시 여전히 이 문제와 씨름 중이니까.


인간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지금의 넌 혼자가 아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도,

이야기를 쓴 작가도,

그걸 읽었던 과거의 나도,

모두 그곳에 머무른 적이 있다.


그리고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해도

세상과 삶은 계속 계속 이어져서

이 구절을 읽고 있는 순간에 이르렀다.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질문을 바꾸어준다.


결국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롭다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민이라면

그래도 어느 쪽이

책임지는 게 더 즐거울 것 같아?


때로는

제안을 건네기도 한다.


일단 결정을 미루고,

확실히 끝낼 수 있는 빨래나 요리를 하는 건 어때?


모두가 살아간다.

자기 연민도
타인에 대한 곡해도
젠체도 핑계도
자의식 과잉도 없이

그저 묵묵히
주어진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아무도 동정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동정받지 않고,

막막함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대를 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바람에 맞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다.


누군가 도망쳐올 수 있는

환상적인 곳을 만들고 싶다.

누구든 환영하는 안전한 곳.


그렇게 망명지에서 돌아온 나는

조금 달라졌다.


그러다 며칠 뒤면

또다시 일상에 잠겨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다른 망명지로

떠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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