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남은 수요일

[근사한 생각 no. 7]

by 아트필러

수요일은 애매한 날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주말의 여파로 힘들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주말을 기다리며 즐거운데, 수요일은 참 무료하다. 마치 월, 화, 수, 목이 온도가 명확한 냉탕과 온탕이라면 수요일은 미적지근한 물 같달까?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라는 노래에서도 '수요일은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라는 가사가 있지 않은가.


그러다 문득 내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중 언제 죽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수요일은 몇 번일까? 난 평생 몇 번의 수요일을 살다 갈까?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요일이라면 무엇을 할까?


예전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하다가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허탈해지고,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걸 하려다가도 이제 와서라는 생각에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모든 것에 무기력해질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것 같다. 정성스럽게 아침을 만들어 먹고, 좋아하는 소설책을 한 권 읽고, 산책을 하면서 따듯한 햇살을 즐기고, 리클라이너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코미디 영화를 하나 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저녁을 먹고, 욕조에서 탕 목욕을 한 뒤 뽀송뽀송한 상태로 재즈 음악을 실컷 들으며 일기를 쓴 뒤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 것 같다. 시간이 된다면 편지도 쓰고 싶다. 일상에서 나를 기쁘게 했던 것들로 하루를 꽉 채우고 싶다. 이 중 하나 정도만 해도 그날 나의 행복 지수는 꽤 높아지는 편이다.


오늘이 마지막 수요일이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채워보자. 그럼 수요일은 더 이상 그럭저럭 한 날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일주일 후에 지구가 멸망하다니. 다들 무지 담담한 것 같아.
그러게. 원래 그런 거야 의외로. 이제 와서 패닉에 빠져 고통받는 것보단
남은 일주일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보내는 게 좋다는 걸 다들 아는 거지.

-영화 <무지개 여신> 속의 영화 <The End of the World>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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