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를 왜 마셔야 하는가..
이번에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는 메뉴인 에스프레소이다. (이번에 커피를 배우면서 안 사실이지만 매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것도 줄여서 ‘에쏘’라고 하더군요)
스페셜티 커피 협회인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의 기준으로는 에스프레소는 특정 기압과 온도의 물로 빠른 시간 안에 커피를 추출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압력은 9 기압을, 물의 온도는 93도를 말하고 빠른 시간은 20-30초 사이를 말한다. 물론 이 기준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에스프레소의 추출이 가능한 기압은 5 기압 이상이라고 하는데 커피로 유명한 회사인 illy에서 연구를 한 결과 9 기압 일 때가 가장 좋은 향미와 바디감을 낼 수 있다고 해서 시중에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대부분이 9 기압으로 세팅이 되어 있다. 이 말은 9 기압보다 적은 압력에서도 추출이 가능하다는 걸 의미하고 최근 에스프레소 추출을 겨루는 대회의 경우 5-6 기압인 저압에서 추출한 레시피로 우승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머신 자체도 이 추출 기압을 조정할 수가 있다. 물의 온도 역시 93도를 권장하지만 바리스타가 본인이 조절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또한 추출 시간 자체도 조절이 가능한 부분이다. SCA에서 말하는 기준은 가이드가 되는 내용으로 인지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부분은 추출된 커피의 양일 것이다. 이 기준은 원두 투입량의 1.5-2.5배의 커피를 추출한다는 것인데 만약 포터 필터(에스프레소 용으로 곱게 간 원두를 담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에 장착하는 부분)에 18g의 원두를 담았다고 하면 추출되는 에스프레소의 양은 27g-45g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보다 더 적게 추출하면 리스트레토, 더 많이 추출을 하면 룽고라고 부른다.
그럼 다시 에스프레소를 왜 마셔야 하는지 이야기를 해보면, 카페 투어를 할 때 가끔 가게가 문을 열 때 즈음 첫 손님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머신 세팅이 되지 않아서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음료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카페의 수많은 메뉴 중 필터 커피 그리고 커피를 사용하지 않는 음료를 제외하고 모든 음료가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다. 우리나라 카페에서 가징 많이 판매된다는 메뉴인 아메리카노에서부터 라떼, 플랫화이트, 카푸치노, 카페 모카, 아인슈페너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메뉴의 베이스는 에스프레소이다. 그래서 커피 맛이 좋은 카페들은 반드시 아침이 되면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그날 사용할 원두를 가지고 에스프레소의 맛을 잡는 루틴을 진행한다. 프로야구에서 타자들이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매번 같은 행동인 루틴을 하지 않고는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것처럼 바리스타들도 그 날 에스프레소의 맛을 잡는 루틴을 마치기 전에는 음료를 팔지 않는다는 말이다. 커피 맛에 정말로 많은 신경을 쓰는 카페의 경우, 오픈 전에 한 번 에스프레소의 맛을 세팅하고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금 손님이 뜸한 오후 타이밍에 다시 한번 세팅을 잡는다고 한다. 물론 이렇지 않은 곳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원두라는 게 워낙 민감한 놈이라 개인적으로는 꾸준하게 에스프레소의 맛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카페를 더 선호한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안 먹는 에스프레소의 맛을 무슨 기준으로 세팅을 하는 건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커피를 배우기 전에도 에스프레소를 자주 마시기는 했지만 맛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잠을 확 깨우는 신맛과 쓴맛 그리고 무엇 보다도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멋지게 털어 넣는 이탈리아 남자들의 간지를 흉내 내려고 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맛을 세팅하는 것을 배우면서 에스프레소가 정말 예민한 친구이고 맛도 참 풍부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맛 세팅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센서리의 영역에 포함이 되는 부분이다. 이건 맛을 표현하는 부분이고 이 중 에스프레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5가지 요소로 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면서 최적의 맛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5가지 요소를 나열하면 Acidity(산미), Sweetness(단맛), Body(질감과 무게감), Aroma(향), Aftertaste(마시고 나서 입에 남는 느낌)이다. 이를 기준으로 위에서 이야기한 에스프레소의 기준을 가이드로 맛을 보면서 가장 좋은 맛을 보여주는 최적의 레시피를 찾아가는 과정이 세팅이다. 여기서 한 가지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에스프레소의 초반, 중반, 후반의 맛이다. 예를 들어 18g 원두로 36g의 에스프레소를 27초에 추출한다고 했을 때, 9초까지를 초반 10-18초를 중반, 19-27을 후반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를 각각 다른 잔에 받아서 마셔보는 것이다. 이렇게 마셔보면 초반의 에스프레소는 자극적인 신맛과 무거운 바디감이 중반의 그것은 신맛이 줄고 단맛이 살아나면서 조금 가벼워진 바디감을 후반의 그것은 향이 거의 없고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워터리 한 가벼운 바디감이 느껴지는 확연히 구분되는 성격을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초중 후반의 맛이 합쳐져서 적절한 산미와 단맛과 쓴맛 그리고 바디감과 기분 좋은 애프터 테이스트를 가진 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나오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커피에서 충분한 추출을 하지 못하면 초반 추출과 같은 자극적인 신맛만을, 너무 지나치게 추출을 하게 되면 쓴맛만 강조되고 바디감이 약한, 발란스가 무너진 에스프레소가 나오게 된다. 이런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음료를 만든다면 그 맛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터 커피처럼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에 추출한 에스프레소의 특징인 응축된 향미를 느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카페의 수많은 음료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음료를 너무 홀대하는 것은 아닐까 해서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서 마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스프레소 마시는 법]
거창하게 썼지만 꼭 지켜야 하는 법은 아니니 참고만 해주시를 바랍니다.
에스프레소하면 위에 거품처럼 떠있는 크레마를 중요시하던 시절이 있어다. 하지만 크레마는 커피의 신선도 정도를 표현해 주는 것이니 크레마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고 크레마가 없을 경우 원두에 문제기 있거나 추출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일단 에스프레소가 나오면 같이 서빙된 티 스푼으로 5-7회 충분히 저은 다음 코를 대고 향을 맡고 그다음 마시고 향미와 질감과 애프터 테이스트를 느끼면 된다. 너무 쓰다고 생각이 되면 설탕을 티 스푼의 1/3 정도를 넣어서 쓴맛을 조금 줄여서 다른 향미들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해서 음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