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도 점수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지난번에 다 하지 못한 커핑(cupping)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카페에서 마시는 원두가 몇 점 짜리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원두마다 점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카페에서 이 점수를 적어놓은 경우는 정말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이 점수가 높다고 모든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는 건 아니니 말이다. 매년 발표되는 미슐랭 가이드에 별점을 믿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것처럼 입맛이라는 건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평가 점수도 있다. 예를 들면 축구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선수들 개인 평점처럼 말이다. 아무튼 이런 점수를 매기는 일이 쉽게 말하면 커핑이다. 어떤 원두가 종합적인 기준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품질을 평가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맛이란 건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커핑이란 일정한 프로세스로 여러 사람이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서 동일한 기준으로 커피를 맛보고 여러 개의 평가 기준을 채점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된다. 이 전체적인 과정을 커핑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커핑 폼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의 커핑 폼이다. 총 10개 항목에 대해서 0~10점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고 이 기준으로 총점이 80점 이상이 되어야 스페셜티 커피로 인정이 된다. (80점 미만은 커머셜 커피로 구분된다) 여기서 잠깐 ‘스페셜티 커피’의 정의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하자면, 위에 말한 커핑의 점수가 80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도 있지만 여기에 더 중요한 부분은 커피 원두의 생산지 확인이 가능해야 하고 그리고 지속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언급한 이 지속 가능성 부분이 아마도 현재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는 가장 큰 화두가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좋은 커피를 만들어내는 농장의 수익성이 제대로 보장이 되지 않으면 이 업계가 계속 이어질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고민이라고 한다. 다시 커핑 이야기로 돌아와서 커핑 폼에 들어있는 항목을 간략하게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1) Fragrance/Aroma : 커피의 향을 평가(Fr은 분쇄된 원두일 때 향/Ar는 물로 추출했을 때 나는 향)
2) Flavor : 커피가 입안에 느껴지는 향미
3) Aftertaste : 커피를 마신 후 (혹은 뱉은 후) 입안에 느껴지는 여운, 질감
4) Acidity : 커피의 긍정적인(단맛을 포함한) 산미, 강도와 품질
5) Body : 입 안에서 커피의 무게감과 질감, 무게감은 강도로 질감은 품질로 평가
6) Balance : 각 평가 항목들의 전체적인 균형감
7) Overall(cupper’s point) : 커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평가 점수
8) Uniformity : 커핑을 진행하는 5개 컵의 일관성, 맛이 다른 컵이 있을 경우 컵 하나당 2점씩 10점에서 감점하는 방식으로 채점
9) Clean cup : 향미 선명성 평가, 결점이 이을 경우 컵 하나당 2점씩 감점
10) Sweetness : 단맛의 유무,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컵이 있을 경우 똑같이 컵 하나당 2점씩 감점
이렇게 10개 항목이 각각 10점 만점이고, 여기에 원두에 결점이 있는 결점두가 포함된 컵이 있으면 이는 Defects라고 해서 합계 점수에서 감점을 해서 최종 점수가 나온다.
그럼 커핑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단히 설명하려고 한다. 먼저 그 날 커핑을 진행할 원두를 각 원두 별로 5개의 컵에 담아 둔다. 컵의 용량은 6온즈-8온즈로 온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컵으로 하고 컵의 용량에 맞춰 원두와 물의 비율을 원두 55g : 물 1L 비율에 맞춰 개량하여 컵에 담아 준비한다. 이제 준비된 원두를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서 (fine grind) 컵에 담아두고 이 준비가 완료가 되면 커핑을 하는 사람들이 Fragrance(건향-분쇄 원두의 향)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평가가 완료가 되면 그다음 잔에 물을(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양의) 5개의 잔에 붇는다. 그러고 4분을 기다리면 커버 사진에 있는 모습이 된다. 이렇게 잔 위에 커피 가루들이 떠오르는 것을 크러스트라고 하는데 이것을 스푼을 이용해서 break 하면서 Aroma(습향-원두가 물에 접촉해서 나오는 향)에 대한 평가를 작성한다. 이다음은 스푼 두 개를 이용해서 잔 위에 떠있는 거품들을 걷어 내는 작업인 skimming을 하고 이게 완료가 되면 커핑 스푼으로 5개의 잔에 든 커피를 마시면서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 평가를 하면 된다. 커피의 온도가 식어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 때문에 70도 일 때 처음 시음을 하고 45도 일 때, 20도 일 때 이렇게 3번에 나눠서 테이스팅을 하고 평가 폼을 완성해가면 된다. 보통 이 과정이 40-50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긴 이야기를 돌아서 센서리에서 언급한 향에 대한 설명이 왜 필요했던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커핑을 진행할 때 그냥 점수만 기록하면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같이 커핑 진행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각각의 항목에 자신만의 평가를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아로마 키트에 있는 향과 아로마 휠을 기반으로 훈련을 하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 외에도 좋은 원두의 커피를 계속 마셔보면서 좋은 커피의 향미와 바디감, 질감 등 이런 센서리의 감각을 계속 유지하려고 커퍼들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이런 커핑의 과정 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최근 들어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카페들에서 퍼블릭 커핑을 진행하고 있다. 약간의 참가비와 3-4시간 정도 투여할 의사만 있다면 쉽게 커핑에 참여해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굳이 이것도 귀찮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카페 또는 집에서든 다른 종류의 두 개의 원두를 가지고 동일한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서 마시고 비교를 하면 된다. 같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누가 그 날의 MoM인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추가로 간단한 커피 상식 하나만 덧 붙인다. 가끔 카페의 원두 설명 중에 CoE라는 약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커핑을 통해 원두의 품질을 겨루는 대회의 약자이다. Cup of Excellence의 약자로 약 14개국에서 진행이 되고 있는 행사이다.
자국은 물론 여러 나라의 커퍼들을 초청해서 그 나라에서 좋은 원두를 생산하는 농장들이 출품한 원두를 대상으로 여러 번의 커핑을 통해서 점수를 매겨 그 나라의 우승 원두를 뽑고 순위를 정하는 대회이다. 최근 올해 CoE가 나라별로 한 창 진행 중이다. 보통 9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원두들이 우승을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90점 이상을 받는 원두도 나온다. 이런 원두들은 특별하게 ‘ninety plus’라고 해서 더 비싼 가격이 경매가 진행된다. 만약 카페에서 CoE 표기가 있는 원두를 보게 된다면 몇 등을 했는지 몇 점을 받았는지 바리스타 분에게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