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불청객, 강승준의 등장
○ 시놉시스: "칼 대신 서류를 든 셰프"
동생 연호가 입사 직전 거액의 사기를 당해 잠적하자, 연우는 동생의 빚을 갚고 그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 호텔 셰프 자리를 포기합니다.
남장을 하고 성운그룹 전략기획팀에 입사한 그녀.
하지만 하필 그녀의 상사인 태준은 매일 점심 메뉴의 염도까지 체크하는 까다로운 미식가입니다.
사고 친동생을 대신하기 위한 여주인공의 고군분투기입니다.
○ 등장인물
- 한연우(26세) : 촉망받던 천재 수 셰프(Sous Chef). 5성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기 직전이었으나, 사라진 남동생 연호의 사고를 수습하고 그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사직서를 던집니다. 칼을 잡던 손으로 이제는 볼펜을 잡고 성운그룹 신입사원으로 잠입합니다
- 강태준(32세) : 성운그룹 본부장이자, 미식가들 사이에서 '악마의 혀'라 불리는 완벽주의자. 정체를 숨긴 재벌 3세로, 스트레스를 요리로 푸는 비밀스러운 취미가 있습니다.
- 한연오(26세) : 한연우의 쌍둥이 남동생, 어릴 때부터 사고를 치고 다닌 사고뭉치입니다.
- 강승준(32세) : 태준의 형. 태준이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제6화. 불청객, 강승준의 등장
태준이 연우에게 연고를 건네며 묘한 기류가 흐르던 본부장실 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습니다.
"여어, 우리 일만 하는 막내 동생. 신입사원이랑 무슨 내밀한 대화 중이지?"
모델 같은 체격에 화려한 체크 슈트를 입은 남자가 여유롭게 걸어 들어왔습니다.
성운그룹의 문제아, 강승준 전무였습니다.
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습니다.
"형이 여긴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지나가다 우리 유능한 본부장님 얼굴 좀 보러 왔지. 그런데..."
승준의 시선이 연우에게 꽂혔습니다. 그는 연우의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며 코를 킁킁거렸습니다.
마치 먹잇감을 찾는 맹수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이 신입, 향기가 아주 독특한데? 탕비실에선 믹스커피 냄새만 날 텐데, 이 친구한테선 '트러플과 갓 구운 브리오슈' 냄새가 나. 그것도 아주 최고급으로."
연우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습니다.
승준의 눈은 태준의 냉철함과는 결이 다른, 비열하면서도 예리한 탐욕이 서려 있었습니다.
"강승준, 예의 지켜. 내 팀원이야."
태준이 연우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경고했습니다.
승준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태준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내 팀원? 오호, 강태준이 누군가를 '내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처음 보네. 얘 봐라, 겁에 질린 눈망울이 꼭 사슴 같잖아? 남자 놈이 말이야."
승준은 연우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려 손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태준이 승준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챘습니다.
본부장실에 팽팽한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손대지 마. 내 팀원이야."
"알았어, 알았다고. 무섭네 정말."
승준은 손을 흔들며 물러났지만, 나가기 직전 연우에게 윙크를 날렸습니다.
"한연호 씨라고 했나? 조만간 우리 '미식 모임'에 한 번 초대하지. 자네 손을 보니까, 서류 뭉치보다는 칼자루가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야."
승준이 나가고 난 뒤, 태준은 연우의 어깨를 꽉 쥐었습니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강승준 전무 근처에는 가지도 마. 그 인간이 부르면 무조건 나한테 보고해. 알았어?"
태준의 목소리에는 질투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연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직감했습니다.
태준이 자신을 보호하려 할수록, 승준은 자신을 이용해 태준을 괴롭히려 들 것이라는 사실을요.
이제 연우는 '정체를 의심하는 본부장'과 '정체를 밝혀내려는 전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승준이 본부장실을 나간 뒤에도 태준의 미간은 펴질 줄 몰랐습니다.
태준에게 연우는 자신의 까다로운 입맛을 유일하게 맞추고, 화상이라는 아픔을 가진 보호 해주어야 할 '특별한 부하직원'이었습니다. 그런 연우를 승준이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죠.
"한연호 씨, 방금 강 전무가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그 사람은 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으니까."
"아... 네, 본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연우는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승준의 날카로운 눈빛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셰프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상대가 진정한 미식가인지, 아니면 그저 권력을 즐기는 자인지.
승준은 전자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위험했습니다.
승준은 태준과 달리 노골적으로 화려한 삶을 즐기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태준이 아끼는 신입사원 연우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서류 냄새가 아닌, 자신과 같은 미식가의 향기였죠.
사건은 성운그룹이 주최하는 신규 호텔 외식 사업 론칭을 위한 '메뉴 품평회'에서 터졌습니다.
태준과 연우가 실무진으로 참석한 자리였습니다.
"어이, 거기 신입. 일로 와서 이것 좀 맛보지?"
상석에 앉아 있던 승준이 연우를 가리켰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최고급 셰프들이 만든 샘플 요리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제지하려 했지만, 승준이 한발 빨랐습니다.
"태준아, 네 비서가 그렇게 미각이 예민하다며? 우리 호텔 사업인데, 젊은 사원 의견도 들어봐야지. 안 그래?"
연우는 얼떨결에 승준의 앞에 섰습니다.
승준은 차가운 수프 한 접시를 내밀었습니다.
"이 수프, 뭐가 부족한지 맞춰봐. 못 맞추면 자네 상사인 태준 본부장 체면이 좀 깎이겠는데?"
연우는 당황했지만, 눈앞의 수프를 보는 순간 셰프의 본능이 꿈틀댔습니다.
한 입 머금은 순간, 연우의 머릿속에 레시피가 그려졌습니다.
"그게... 제 생각엔 베이스는 완벽하지만, 마지막에 들어간 오일의 향이 너무 강해서 주재료인 관자의 풍미를 죽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레몬 제스트를 살짝 더했다면 뒷맛이 훨씬 깔끔했을 텐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요리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연우는 급히 말을 흐리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하지만 승준의 눈은 번뜩였습니다. 그가 찾던 '천재적인 감각'을 확인한 순간이었죠.
"하! 레몬 제스트라니. 너,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승준이 연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습니다.
"태준아, 이 친구 탐나는데? 내 직속 기획팀으로 보내주면 안 되냐? 내가 연봉 두 배로 줄게."
태준은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우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뒤로 잡아당겼습니다. 형제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형, 농담이 지나치고 예의도 없네. 인사권은 내 소관이야. 그리고 한연호 씨는 내 업무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팀원이야. 대체 불가능한 인력을 뺏어가는 건 비즈니스 매너가 아니지."
태준은 연우를 데리고 품평회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복도를 걷는 태준의 발걸음이 무척 빨랐습니다.
"한연호 씨."
"네, 본부장님."
태준이 멈춰 서서 연우를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초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강 전무가 부르면 나한테 보고하고 가. 그 인간은 사람의 재능을 부품처럼 쓰는 사람이야. 너처럼... 성실하고 섬세한 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부류라고."
태준은 여전히 연우를 '지켜줘야 할 부하직원'으로 정의하고 있었지만, 그를 형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생처음 '인재 확보'라는 명목의 강한 집착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